입법 멈추자 행정도 올스톱…동물국회 탓 식물정부 전락

[멈춰선 국회 발목잡힌 경제]
‘홍남기 1순위 법안’ 최저임금법 상반기 처리 무산
“성장률 1%대면 옷 벗어야” 가시방석 앉은 정부
野 “국감은 조국과 엮어야”, 정책 국감 물 건너가
국회 스트레스로 뇌출혈 입원도 “결국 국민 피해”
  • 등록 2019-09-23 오전 5:05:00

    수정 2019-09-23 오전 5:05:00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18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찾아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제공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김상윤 김소연 기자] 기획재정부 A 과장은 지난여름만 생각하면 지금도 한숨이 난다. 국회에 상정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100일간 표류하는 내내 A 과장은 국회 인근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추경안 심의가 이뤄질지 몰라서다. 세종시 집을 떠나 영등포 모텔을 전전하기도 했다. 가족들과도 ‘생이별’을 했다. 그는 “이렇게 고생해도 경제가 안 좋아지면 경제부처 공무원들만 욕을 먹는다”며 “앞으로도 국회가 정부 발목을 잡는 일이 더 많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국회가 조국 사태로 입법부 역할을 포기하자 행정도 멈춰섰다.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도 국회에서 표류할 우려가 커졌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정부의 경제정책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입법 멈추자 행정도 ‘올스톱’

일손을 놓은 국회 때문에 행정이 제 역할을 못하는 사태는 이미 벌어졌다. 특히 세종 관가에선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법안이 소득주도성장을 보완하고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홍남기표 1순위 법안’이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작년 12월 취임식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 등과 같이 시장의 기대에 비해 속도가 빨랐던 일부 정책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보완해 나갈 것”이라며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을 약속했다.

하지만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된 채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국민취업지원제도(한국형 실업부조) 관련 법안 처리도 불투명하다. 모두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한 법안들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정치적 공방이 가열되자, 공정경제 관련 정책도 표류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공정거래법 도입 38년 만에 전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10개월째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조차 넘지 못했다. 공정거래법에는 그동안 미흡했던 피심의인의 방어권을 강화하는 등 경영계 요구를 반영한 내용도 여럿 포함돼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공정위원장 시절 “현행 공정거래법은 산업화 고도성장기 시대(1980년)에 만들어진 법률”이라며 제도 개선을 호소했지만 국회는 모르쇠였다. 정부 관계자는 “상임위만 열면 조국 얘기뿐인데 차분히 경제 법안을 논의할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경제부처들이 팔짱을 끼고 국회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경제 지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재작년 3.1%를 찍었는데 올해는 1~2%대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수출은 작년 12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세다. 올해 2분기 소득 격차(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는 2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였다. 경제부처 고위직들 중에서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종 관가에서는 “올해 성장률이 1%대로 가면 옷 벗을 고위직이 한두명이겠나”라는 말까지 나온다.

새벽까지 국회서 일한 기재부 관료 중환자실行

그렇다고 정부가 국회보다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도 쉽지 않다. 자칫 ‘의원님’들의 심기를 거슬려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세종 관가에선 홍 부총리가 추경 통과를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가 겪은 일이 지금도 회자된다.

홍 부총리는 지난 7월 “추경 때문에 속이 탄다”며 여야 원내대표를 찾아 신속한 추경 처리를 호소했다. 그러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굉장히 무례한 방법으로 왔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홍 부총리가 사전 일정조율 없이 방문했다는 이유에서다.

실무직들의 고충도 적지 않다. 국정감사,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조국 사태로 불필요한 업무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야당이 조국 장관과 어떻게든 엮으려고 자료를 무더기로 요청하고 일부 언론에 의혹을 흘리고 있다”며 “주말에도 해명자료를 쓰는 게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국회 스트레스’로 건강 우려까지 토로하고 있다. 기재부 예산실 A 서기관은 지난해 12월3일 국회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당시 그는 국회의 늑장 심사로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넘기자 새벽까지 예산 업무를 봤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는 조국 공방으로 크리스마스를 넘겨 예산안이 처리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물 국회’ 때문에 ‘식물 행정’으로 전락하는 사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회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방향성을 잃으면서 정부 행정까지 마비되는 상황”이라며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여야 모두 민생경제를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증가율)은 재작년 3.1%를 찍었는데 올해는 1~2%대로 하락할 전망이다. 수출은 작년 12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세다. 단위=%. [출처=각 기관, 산업통상자원부, 디자인=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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