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회계 개혁에서도 ‘듀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감사보수 인상 우려한 기업들, 반대 입장 굽히지 않아
감사인 선임 과정 혼란 초래…막바지 들어 겨우 확정
절차 또한 공감 얻어야 회계 투명성 ‘진심’ 오해 없어
  • 등록 2019-02-19 오전 5:20:00

    수정 2019-02-19 오전 5:20:00

지난 11일 서울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열린 ‘표준감사시간 제정 공청회’에서 최중경(단상) 한공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한국공인회계사회 제공)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표준감사시간을 둘러싸고 회계업계와 상장사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감사시간 증가에 따른 보수 인상과 이에 대한 부담이 내재됐지만 표면적으로는 표준감사시간 제정안의 완성도 부족과 절차상 하자 등이 쟁점으로 부각됐다. 차질 없이 굴러가던 회계 개혁 추진이 처음 돌부리에 걸렸다.

기업 반발에 결국 해 넘긴 표준감사시간 제정

한국공인회계사회가 표준감사시간 최종안을 발표한 지난 14일, 상장사 기업단체인 한국상장사협의회·코스닥협회·코넥스협회는 발표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사실 지난해 11월 외부감사법 개정으로 주기적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 도입이 확정되면서 감사시간 증가는 불가피했다. 감사시간은 보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기업들의 비용 부담 우려는 커졌지만 회계 투명성이라는 공동의 목표 때문에 대놓고 반대 입장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와 기업단체, 정보이용자 등이 함께 제정안 마련에 들어간 표준감사시간은 이러한 기업의 불만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무대였다. 각 이해관계자별 대표자들이 서로 의견을 내놓고 입장을 조율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표준감사시간은 제정 초기부터 파행을 겪었다. 기업단체들은 한공회가 정한 표준감사시간 대상 그룹·업종 구분 기준과 감사시간 산정 모형의 적정성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수용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표준감사시간심의원회 내부 협의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공회는 당초 지난해 11월 외감법 시행에 맞춰 표준감사시간을 제정·공표할 예정이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지난해 12월 20일 발표할 예정이던 초안 발표가 무산되기도 했다.

외감법 개정으로 표준감사시간은 당장 올해 사업연도부터 적용된다. 외부감사 대상 기업이 올해 감사인과 계약을 맺을 때 이 기준을 참고해야 하지만 제정이 늦어지면서 혼란이 생겼다.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 대상인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는 감사인 선임 기한이 해당 사업연도 말까지다. 올해 감사인과는 표준감사시간이 확정되지도 않은 지난해말 진작 계약을 맺은 셈이다.

해를 넘긴 표준감사시간은 1월과 2월 두차례 공청회와 의견 수렴 후 상장사 감사인 선임 기한인 2월 14일에 맞춰서야 겨우 최종안을 확정할 수 있었다. 감사인 선임 과정에서 혼란이 생길 것을 고려해 금융위원회는 올해에 한해 감사인 선임 기한을 3월 15일까지로 한 달 늘리기로 했다.

기업들은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종안 발표에 앞서 진행한 서면 결의에서 4개의 기업단체(중소기업중앙회·코스닥협회·코넥스협회·상장사협의회)는 아예 참여를 거부했고 상장사 유관기관은 최종안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못 박았다.

회계업계에서는 감사시간 상한선을 정하는 등 기업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음에도 반대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최중경 한공회 회장 또한 “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기업측 의견 중 수용 가능한 것은 모두 반영했다”며 “당초안보다 많이 후퇴해 유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젊은 회계사가 주축인 청년공인회계사회에서는 재계에 대해 “기업들이 표준감사시간을 금융당국이 나서 규제하라는 요구 자체가 반시장적인 논리”라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투자를 받으려면 (회계) 투명성을 공인 받아야 한다”고 규탄했다.

정당한 절차는 회계 필수요소…의심 해소해야

기업들도 할 말은 많다. 표준감사시간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제정 권한을 지닌 한공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표준감사심의위의 구성을 보면 기업 대표 5명, 회계법인 대표 5명, 정보이용자 대표 4명, 금융감독원장 추천 1명 총 15명으로 이뤄졌다. 이중 업계측 대표를 제외하면 사실상 한공회의 입장에 서 있는 위원들이 8~9명은 되는 것으로 기업측은 추산했다. 기업 대표들이 소수 의견이어서 제정안 마련 과정에서 제대로 된 협의도 힘들었다는 주장이다.

심의위의 일정이나 협의에서도 절차상 문제가 제기됐다. 우선 외부감사법 시행령에 따르면 표준감사시간 제정안은 심의위 의결 후 20일 이상 인터넷 홈페이지 공고 후 공청회를 열도록 했다. 한공회는 의결 전인 지난달 11일 먼저 공청회를 열고 초안을 공개해 이를 어겼다는 지적이다. 기업측은 공청회 며칠 전에야 토론자 섭외 요청을 받고 다음 심의위 일정도 늦게 공지 받는 등 소외됐다는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면 결의 불참에 대해서도 한공회의 일방적인 요구였다고 반박했다. 당초 이달 13일 열린 심의위에서는 22일 확정 발표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합의했지만 갑자기 당일 오후 일방적으로 서면 결의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최종안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면 결의는 적정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감사인 선임 기한에 맞춰 확정해야 한다는 한공회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명 ‘원칙중심’이라고 일컫는 국제회계기준(IFRS) 처리가 적정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듀 프로세스(Due process·정당한 절차)와 성실성(integrity)이 꼽힌다.

성실성이란 기업의 재무제표 작성과 외부감사인의 감사 과정이 회계기준이 정한 원칙에 얼마나 부합하게 처리됐는가를 보는 항목이다. 듀 프로세스는 이 같은 성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회계 처리의 의사결정 과정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면 여기에서 도출된 결과 또한 문제 삼을 수가 없다는 논리다.

지난해 큰 화제가 됐던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의 분식회계 논란 또한 회사의 회계 처리가 듀 프로세스와 성실성에 부합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이에 원칙중심 회계기준 환경에서 듀 프로세스의 가이드라인을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회계 개혁 또한 듀 프로세스가 부여하는 절차의 정당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회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는 부인할 수 없지만 이를 위한 일련의 제도 도입이 공감대를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이러한 과정이 정당성이 잃게 될 경우 회계 개혁의 추진 이유가 기업가치 개선과 국부 상승이라는 본의의 목적이 아닌 감사보수 인상이라는 잿밥에 있는 것은 아닌지 ‘성실성’마저 의심 받을지도 모른다.

상장사 단체들은 한공회의 표준감사시간 제정의 절차적·내용상 하자에 대해 법적 조치 등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한공회 또한 제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표준감사시간은 앞으로 3년마다 감사 환경 등을 고려해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 반영하게 된다. 회사 재무정보 변동과 실제 감사 투입 시간 등을 감안해 지속 업데이트될 예정인 만큼 이해관계자 모두가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이 모색되길 기대해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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