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건 알아야해]사전경고 무시한 포항지진은 결국 人災

굴착 때 이수 누출…유체 주입하자 높은 압력
공극압에 단층면 미소지진→본진진앙 영향 줘
지진계 분석 부실…‘감시자’ 없는 내부자 국책사업
스위스 바젤 사례 알고도 강행…정부 책임 ‘불가피’
  • 등록 2019-03-24 오전 6:11:00

    수정 2019-03-24 오전 6:11:00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 분석 연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09년 1월1일부터 2017년 11월 본진까지 포항지역과 그 주변에서 발생한 것으로 검출된 98개 지진을 대상으로 정밀 지진위치 분석을 수행한 결과 지열발전과 지진 위치가 시간적·공간적으로 거의 일치한다”고 결론 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지난 2017년 11월 규모 5.4의 포항지진 원인이 인근 지열발전소 때문이라는 정부조사연구단 결론이 나왔습니다. 포항지진은 지난 2016년 9월 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규모 5.8에 이어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역대 두 번째로 컸던 지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중상자 1명을 포함해 118명이 다치고 민간주택 581억원, 공공시설 269억원 등 85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습니다. 포항지진시민대책본부는 지난해 10월 컨소시엄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현재까지 약 1300명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물적 피해 외에도 1인당 하루 5000~1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습니다. 이번 발표로 소송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포항지진, 자연지진 아니다”…미소지진에 촉발돼

23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에 따르면 지열발전소에 지열정을 굴착할 때 이수(泥水)가 누출됐고 유체(물)를 주입하자 압력이 발생해 포항지진 단층면 상에서 규모 2.0 미만의 미소지진을 일으켰습니다. 이 미소지진의 여파로 시간이 지나며 규모 5.4의 본진이 촉발했다는 결론입니다.

지열발전소 시추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자료는 바로 고압의 물을 이용해 암반에 틈을 만드는 수리자극(hydraulic stimulation) 시 발생하는 작은 지진 즉, 미소지진의 정확한 위치입니다. 미소지진의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은 시추공에 달려 있는 지진계입니다. 정부조사연구단의 해외조사위원회는 미소지진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했고 그 결과 단층대에 물을 거의 직접 주입했다는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수리자극 시 발생한 미소지진 자료를 제대로 분석했더라면 단층대에 물을 주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게 됐을 것이고 그러면 작업을 중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분석이 부실했던 만큼 미소지진의 경고는 무시됐습니다.

지난 2006년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에 물을 주입한 뒤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하자 스위스 정부는 곧바로 지열발전소 운영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이후 바젤에서는 규모 3.4보다 더 큰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포항의 경우는 규모 2.0 미만의 미소지진에 이어 2017년 4월 규모 3.1이란 이례적으로 매우 큰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계속해서 물을 주입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스위스 사례가 극히 대조됩니다.

지난 20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있는 포항지열발전소 모습. 이날 대한지질학회는 지난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왜 그랬을까? 통상 건설공사를 보면 시공회사가 있고 과정을 감시하는 감리회사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은 타당성 사전 조사부터 위기 대응까지 컨소시엄 내부에서만 폐쇄적으로 정보가 공유되면서 결국 관리 부실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자문해 줄 국책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역시 사업단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국가 차원 원스톱(One-stop) 지원이란 취지는 좋았지만 심판이 선수로 뛰는 모양새와 같은 부작용이 잇따랐습니다. 발전소 건설부지 단층 조사를 하지 않기로 한 결정도, 지진이 나면 정부에 보고할지 말지도 모두 사업단 스스로 내렸습니다.

정부조사단 총괄책임자를 맡은 이강근 서울대 교수(대한지질학회 학회장)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향후 미소지진과 안정성에 관한 장기적인 모니터링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추가적인 여진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있다’, ‘없다’로 분명하게 나눠서 답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포항 지열발전소 주관 기관인 넥스지오의 서울 송파구 사무실. (사진=연합뉴스)


사업 주도한 넥스지오, 작년 회생절차…배상능력 ‘불투명’

포항지진이 순수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다양한 사업 주체가 얽혀 있어 어디에 얼마만큼씩 배상책임이 있는지 여부는 정부 조사과정과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포항 지열발전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010년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과제를 기획하고 넥스지오 컨소시엄이 선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자원개발 및 탐사업체인 넥스지오는 전문가 자문위원회 등을 거쳐 그 이듬해 포항을 부지로 선정했고 2017년 11월 지진이 나서 사업이 중단되기 전까지 지열발전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현 공정률은 90% 수준으로 지금껏 국비 185억원을 포함해 총 391억원이 투입됐습니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지진으로 무너진 포항시 북구의 건물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업 주체인 넥스지오는 지진 직후인 지난해 1월 경영 악화로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포항 지열발전소는 미소지진이 일어나자 바로 폐쇄된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와 달리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사업 진행 전 과정의 적정성을 엄중히 조사할 것”이라며 “현재 조사 방법을 놓고 관계부처 간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 차관은 “정부와 컨소시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동시에 진행 중이어서 법원에서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조사연구단은 지금은 중단된 지열발전 처리 문제에 있어 “지진의 원인을 조사했다”며 “(발전소) 부지 처리는 우리 일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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