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읽는증시]5·16과 유신헌법 거쳐 탄생한 증권거래세

국회 해산한 1962년 국가재건회의에서 증권거래세 첫제정
기업부담 낮추려 1972년 없애고 7년뒤 재시행.."과세형평 원칙"
세금꺼린 자금 증시에서 대거 이탈.."투매 현상 이어져"
법제정하되 `탄력세율` 적용하기로..툭하면 시행령 개정
`손해거래 세금부과` 논란 끊이지 않고 40년째 이어져
  • 등록 2019-02-24 오전 8:00:00

    수정 2019-02-24 오전 8:00:00

1978년 증권거래세 도입 방침이 밝혀지고 증시는 자금이 빠져나가 혼란을 겪었다. 그해 8월24일 치 매일경제신문 `株券(주권)을 찢어버린 主婦(주부)투자자` 제하 기사는 당시 개미의 울분을 전한다. 손해를 본 투자가가 증권사를 찾아가 주권을 찢었다는 내용이다. 이 투자가는 “정부가 부양책을 쓰기는커녕 거래세를 도입해 시장을 망쳤다”고 말했다.(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증권거래세는 1962년 11월 처음 탄생했다. 5·16 쿠데타(1961년)로 등장한 군인이 장악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만든 ‘증권거래세법’이 근거다. ‘공평과세 원칙’이 명분이었다. ‘세정운영 합리화와 세 부담의 공평을 기하는 동시에 세수 확보를 기하려는 것’(경향신문 1962년 11월1일 치)이 법 제정 목적이다. △과세대상은 유가증권 △과세표준은 거래금액 △세율은 당일결제 천분의 1 등이 골자다. 거래세율 0.1%는 현행 0.5%와 비교해 크게 낮은 편이었다. 법은 1963년 1월5일 거래분부터 적용했다.

주식거래가 익숙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증권거래세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었다. ‘증권거래소 상장주식이 거래될 때마다 투자자에게 거래세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한다’는 기사(동아일보 1962년 9월27일 치)에 담긴 전언 투의 문장은 투자가들이 받았을 생경함을 대변한다. 결국 법은 9년 만에 사라졌다. 정부는 1971년 발표한 ‘세제개혁안’에서 이듬해부터 증권거래세법을 폐지하기로 했다. `기업 부담을 낮추고 자본거래를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법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78년 무렵이다. 정부는 이듬해 시행을 목표로 ‘증권거래세법’ 신설을 추진했다. `양도차익에 당연히 세금을 물리는 과세형평 원칙이 주식시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는 게 명분이었다. 시장에서는 ‘투기 억제에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고, 투자심리를 위축시켜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할 부작용을 초래할 것’(매일경제 1978년 7월20일 치)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로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세금을 피하려는 돈이 증시에서 무섭게 빠져나갔다. ‘증권거래세 신설 시도에 투매가 이어져 증권시장에서 좋다는 주식이 모조리 박살 나는 판이라 여타주식은 말할 것도 없는 형편’(경향신문 1978년 9월8일 치)이었다. 갈 데를 잃은 돈은 지하경제로 흘러 ‘사채시장 이율이 떨어지는 이변’이 일었다. 놀란 정부는 법 제정을 유보하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논의 초점은 세율로 옮겨갔다. 세금을 내릴 테니 법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진통 끝에 역사상 두 번째 증권거래세법이 1978년 12월5일 시행됐고, 1979년 1월4일 거래분부터 적용됐다. 이 법 제8조 1항에는 ‘증권거래세의 세율은 1000분의 5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협상하자고 해놓고, 정부 원안(0.5%)이 그대로 담겼다.

대신 시행령에 ‘탄력세율’을 만들어 예외를 뒀다. 첫 시행령에는 △양도가액과 모집·매출가액이 액면가 이하이거나 △은행주 등은 거래세를 ‘0%’로 하는 내용이 담겼다. 보험사, 종금사 거래 세율은 0.3%로 정했다. 현행 시행령상 탄력세율(코스피 0.15%, 코스닥·코넥스 0.3%)과 견줘 대상과 정도가 다르다.

탄력세율은 시행령이 근거라서 정부 맘껏 주무르기가 가능했다. 정부는 법시행 직후 세율을 0.2%로 내렸고 증시안정화 대책이 나온 1990년 6월(0.2%)과 1995년 6월(0.45%)에도 인하한 적 있다. 1997년 환란 속에 치른 15대 대통령 선거 때 유력 후보가 증권거래세 인하·폐지를 공약하기도 했다. 분명히 법은 ‘거래세율 0.5%’였지만 무력했다. 법 밑에 시행령이라지만, 증권거래세 시행령은 법 위에 있었다.

그러나 시장 관심은 ‘시행령 조정’이 아니라, 오로지 ‘법 폐지’에 있었다. 법 제정 전부터 일었던 반발은 시행 이후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는다. ‘세금 탓에 주식거래를 꺼리면 자본시장이 침체할 것’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증시가 살아야 기업이 살고,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사는데 그 과정의 첫발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율 산정의 근거가 빈약하고, 선진국보다 세율이 높다는 지적도 줄곧 제기돼왔다. 정부는 앞서 그랬던 것처럼 시행령을 요리조리 고쳐 반발을 잠재우려 했다. 그러니 오늘날 `누더기 시행령`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마저 대증요법일 뿐이라서 법 폐지 요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왜 손해가 나는 거래에도 세금을 물리냐`는 데에 반발이 컸다. ‘증권양도차익에 세금을 물리기는 현실적으로 기술적으로 어려워서 소득세 성격이 사라지고 거래세가 돼 버렸다’는 지적(경향신문 1978년 8월25일 치)은 법을 제정할 당시부터 나왔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지적은 유효하다. 금융투자업계가 그동안 얼마나 증권거래세법 폐지를 염원해왔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쯤 되니 갖다 붙이는 족족 법을 없앨 이유다. 주가가 900선을 돌파한 시점에는 1000포인트 시대를 전망하면서 ‘증권거래세를 올리면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한겨레 1999년 6월29일 치)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시장 관점을 벗어나 접근하면, 증권거래세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트집 잡힐 만하다. 처음 법을 제정한 1962년 당시 5대 국회는 5·16쿠데타로 해산한 뒤였다. 입법·사법·행정을 장악한 최고회의가 헌정이 마비된 상황에서 법을 만들었다. 1978년 제정한 현행 법도 비슷하다. 그때 법을 만든 9대 국회는 유신헌법 지배를 받았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지명하던 때였고, 정부 의지가 법 제정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20대 국회가 그때 그 법을 손보려고 현재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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