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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수익률이 저조하면 마진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수수료를 파격적으로 인하할 방침입니다.”
고령화 흐름과 함께 부쩍 커지는 퇴직연금 시장을 두고 금융권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수익률이 1%에도 채 못미쳤던 시중은행들이 수익률 올리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동시에 쥐꼬리만한 수익률에도 따박따박 받아갔던 수수료를 인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쥐꼬리 수익률’ 오명 벗어나기 안감힘
25일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시중은행 중 퇴직연금 적립금 비중이 가장 높은 신한은행의 올해 1분기 확정급여형(DB형) 수익률은 1.56%로 지난해(1.43%)보다 상승했다. DB형은 퇴직시 지급받는 연금 수준이 사전에 결정되는 상품이다. 주로 정기예금에 투자하는 등 보수적으로 운용되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기준 신한은행의 점유율은 10.0%로 삼성생명(13.0%)에 이은 2위다. 신한은행의 확정기여형(DC형) 수익률 상승은 더 두드러졌다. 올해 1분기 1.52%로 지난해(0.89%) 대비 0.63%포인트 올랐다. DC형은 근로자의 운용 성과에 따라 연금 규모가 결정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원리금 보장상품의 경우 정기예금 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수익률이 좋아졌고, 비(非)보장형 상품은 증시가 회복된 영향이 가장 컸다”며 “각 은행이 수익률 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는 것도 큰 이유”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0.97%로 손해보험(1.72%), 생명보험(1.40%) 등 다른 업권보다 낮았다.
최근 퇴직연금 사업체계를 대폭 개편해 화제를 모은 신한금융의 인사들은 “결국 최우선 과제는 수익률 제고”라고 말했다. ‘쥐꼬리 수익률’ 오명을 벗어나야 점유율 확대도 도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부동산, 인프라, 사회간접자본(SOC)펀드 같은 중위험 중금리 상품 비중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권은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금융그룹 내에서 퇴직연금 사업을 총괄할 수 있는 퇴직연금센터 등 전담조직 신설, 지점 내 퇴직연금 전담창구 구축, 퇴직연금 사업의 확대를 반영한 핵심성과지표(KPI) 조정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익 저조하면 수수료 파격인하 검토”
수익률 제고와 함께 거론되는 게 수수료 인하다. 지난해 은행권의 총비용부담률은 0.49%로 전년(0.47%) 대비 0.02%포인트 올랐다. 생명보험(0.45%), 손해보험(0.40%) 등보다 수익률이 낮았음에도 수수료 부담은 더 컸던 것이다. 수익률이 1%에도 못 미치는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상황에서 수수료까지 떼이면 사실상 손해다. 총부담비율은 운용관리 수수료 등 적립금 운용에 수반하는 총비용을 나타내는 통계다.
신한은행은 수익률이 DC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DB형의 수수료를 대폭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비보장형 상품의 수수료를 내리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퇴직연금을 오래 내야 하는 20~30대 청년층의 수수료를 50대 이상 장년층보다 낮추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최근 그룹경영회의에서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수료 체계를 구축하라”고 주문한데 따른 것이다. 신한은행은 이같은 수수료 인하안을 오는 6월 확정한다.
은행권이 퇴직연금 대전(大戰)을 벌이는 것은 차세대 먹거리로 놓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시장 규모만 187조9000억원에 달한다. 김병덕 선임연구위원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다층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체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퇴직연금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