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희의 톡톡아트]에로스는 마마보이

-엄친아 에로스, 영원히 엄마 곁에서 놀다!-
  • 등록 2012-07-29 오전 9:01:10

    수정 2012-07-29 오전 9:01:10

윌리엄 부게로, 비너스와 큐피트, 1870년대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에로스는 마마보이다. 마마보이는 엄마인 아프로디테의 편에서 볼 땐, 깨물어주고 싶은 앙증맞은 존재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다가 나를 쏙 빼닮은, 게다가 여리디 여린 꽃미남이 바로 내 아들이다. 더군다나 에로스의 경우 아비가 누구인지 확인이 안 되니, 그 점에서 진정 ‘나, 아프로디테만의 영원한 소유물’이 아닌가! 게다가 에로스는 프시케와 떠들썩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더니, 지금은 완전 그녀를 방치하고 여전히 엄마랑 끈질기게 붙어 다닌다. 에로스가 자신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고 하데스(지하세계)까지 다녀온 아내보다 엄마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미술사에서 아프로디테를 그린 그림에는 어김없이 아들 에로스가 등장한다. 에로스가 없으면 아프로디테임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아프로디테의 존재는 에로스가 완성하는 것이다. 엄친아가 엄마의 존재를 완성시켜주듯이 말이다. 아프로디테와 함께 있는 에로스를 보면, 엄마 곁에 ‘영원한 아가’로 머물고 싶은 남성들의 심정이 읽혀진다. 영원한 연인인 엄마 아프로디테와 아들 에로스는 인간인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의 신적 버전 아닌가?

서양회화에서 에로스가 등장하면 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중에서도 에로스가 날아다니면, 그 아래쪽 남녀가 서로 깊은 사랑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에로스가 횃불을 들고 나타나면 그림 속 남녀의 뜨거운 사랑이 불같이 타올랐음을 뜻한다. 에로스의 눈이 천으로 가려져 있으면, 그것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 충동적인 사랑의 어리석음과 사랑의 맹목성을 나타낸다. 더불어 그런 사랑에 따르는 죄와 불행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로스가 잠들어 있는 장면은, 좁게는 남녀의 사랑이 깨어졌음을 의미하거나, 넓게는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전쟁 중인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에로스가 활동하지 않는 시대, 즉 사랑이 없는 시대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화가들은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를 거의 한 점씩은 그릴 정도로 그 모자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드러낸다. 당연히 화가가 생각하는 모자관계, 그리고 자신과 자기 어머니의 관계를 드러내기에 아주 좋은 테마인 것이다. 마치 성모자상에 화가자신(예수)과 어머니(마리아)의 관계를 담아내듯이 말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그림에선 너그러운 엄마를 가진 화가의 모습이 읽혀지고, 때론 무심한 엄마를 가진 화가의 모습도 보이며, 무심하다 못해 자기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팜므파탈같은 엄마의 모습도 엿보인다. 또 어떤 그림에서는 늘 야단만 치는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아뇰로 브론치노,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 1545년경
먼저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모자관계가 가장 섹슈얼하게 드러난 작품을 보자. 바로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 시대의 대화가 브론치노의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인데,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를 그린 작품 중 가장 복잡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다. 더 이상 어리다고 볼 수 없는 사춘기 소년 에로스가 어머니의 가슴을 만지면서 딥키스를 하고 있다니 얼마나 충격적인가? 먼저 아프로디테가 들고 있는 건 황금사과인데, 파리스로부터 아름다운 여자를 준다는 약속으로 받아낸 것이다. 아프로디테가 에로스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는 것과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왕관을 벗기려고 하는 것은 똑같이 무기(권위)를 빼앗는 것으로 둘 다 정열의 헛됨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모래시계를 짊어진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무대를 어둠의 장막으로 덮고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 모든 정열을 없앤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불어 모든 사랑과 미의 속성이 드러나는데, 망각(왼쪽 뇌가 없는 여자의 얼굴), 유희(장미꽃다발을 든 소년의 발목의 방울은 사랑의 도래를 알리고, 가시를 밟은 발은 쾌락과 고통이 맞물린다는 사랑의 속성을 의미), 질투(에로스 뒤에 머리를 뜯으며 괴로워하고 있는 늙은 여자), 가식(가면), 기만(반대로 달린 손, 비늘 덮인 몸과 뱀의 꼬리, 사자발톱을 가진 소녀) 등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피상적으로는 사춘기가 된 소년과 어머니의 성적인 장난을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둘 다 사랑의 신이니, 그림에 담긴 의미는 근친상간적 의미를 초월하여 사랑의 나르시시즘적인 속성, 즉 사랑이 사랑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루카스 크라나흐, 비너스에게 불평하는 큐피트, 1525년경
또한 엄마의 꾸중을 듣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나타낸 작품도 있다. 특히 북유럽 르네상스 회화 중 루카스 크라나흐의 그림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리얼하다. 표면상 에로스가 꿀을 훔쳐 먹으려고 그랬는지, 여하튼 벌집을 쑤셔놓아 벌에 쏘이고 있는 장면이다. 엄마는 벌침처럼 화살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에로스를 꾸짖고 있고, 아들은 마치 엄마가 시켜서 한 일인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That‘s not fair)”고 불평하는 듯이 보인다.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고거 봐라!”하는 심정으로 아들을 돕기는커녕 수수방관하고 있다. 꿀을 훔치다가 벌에 쏘이는 에로스와 그것을 지켜보는 아프로디테는 무절제한 욕정이 초래할 파탄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같은 테마의 일반적인 그림과는 달리 오히려 대중을 도덕적으로 교화하려는 숨은 의도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그림 중 가장 장난기 가득한 유머러스한 작품이 있다. 아마 화가는 엄마에게 영원한 개구쟁이 어린 아들로 남고 싶은 심경을 담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로렌초 로토의 <비너스와 큐피드>(1525년)를 보라! 엄마의 배에다 오줌을 싸는 아들의 모습이다. 에로스는 짓궂은 표정으로 엄마를 놀려대고 있고, 엄마는 그런 무례한 아들이 너무 귀엽고 어이가 없다는 듯 아주 착한 웃음을 짓고 있다. 화가의 엄마가 화가의 엉뚱한 장난에도 늘 너그럽게 대해줬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 그림은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이라고 한다. 그것도 화가의 조카가 주문했다는 설이 있으니, 다른 주문자보다 신부와의 유대관계가 좀 더 강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부의 얼굴표정이 예사롭지 않을 만큼 친밀해보이기 때문이다. 신부인 아프로디테는 화려한 보석이 달린 왕관과 귀걸이, 그리고 면사포를 쓰고 있다. 아프로디테 주변에는 붉은 망토, 고동, 장미 등 사랑을 상징하는 여신 특유의 상징물이 놓여있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은 결혼생활의 변치 않는 충절을 의미한다. 뱀 역시 질투의 뜻보다는 남근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산을 의미하고 있다. 은매화관을 쓰고 있는 에로스가 또 다른 은매화관을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것은 다산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화가는 사랑과 정절을 상징하는 도상들을 배치함으로써 결혼의 신성한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당대에 이런 그림을 결혼축하 그림으로 주문하곤 했다는 데, 아프로디테가 일처다부제의 수호신쯤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런 그림을 주문했을까?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면 일처일부제를 옹호하는 신인 헤라를 그려달라고 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주문한 이유는, 아마도 아프로디테의 치명적 매력인 남자를 유혹하는 힘을 남편인 자기한테만 쓰라는 뜻일 테고, 그래서 아이를 많이 낳아 잘살아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재색을 겸비하고 게다가 아이까지 쑥쑥 잘 낳는 여자를 어느 남자가 마다하겠는가?

어쩌면 아프로디테와 어린 에로스의 그림은 아마 영원히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성인 남성들의 바람을 시각화한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닌 나의 여자, 나의 거울로서의 엄마, 그런 엄마 곁에 평생 어린아이로 머물고 싶은 남자의 마음, 남자의 로망이 담겨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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