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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채권은 처음 발행할 때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을 주겠다고 확정한 일종의 차용증서다. 이자가 확정돼있는 채권은 안전자산으로 평가 받는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채권금리는 매일 변한다. 왜 그럴까. 이자수익 외에 자본수익을 얻으려는 이는 채권을 만기까지 갖고 있지 않고 유통시장에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금리가 오르내리는 건 채권을 보는 세상의 눈이 바뀌어서다. 가령 확정금리 3%짜리 채권은 시중금리가 1%대로 내리면 몸값이 뛴다(채권가격 상승). 이자를 더 받을 수 있으니 당연한 이치다. 요즘 같은 시대에 7% 은행 적금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반대로 매수자는 3%짜리 채권을 더 낮은 금리에 사게 될테니 채권금리는 하락하는 것이다.
요즘이 딱 그렇다. 먼 미래에 경기가 나빠지고 이자는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이 만연하다 보니, 금리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서울채권시장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시장 참가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 여건을 살피는 ‘선수’들이다. 금리 변화에 경기 예측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장단기 금리차, 경기선행지수 구성요소”
장·단기 금리 차는 중요하다. 채권은 만기가 짧을수록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고, 길수록 향후 경기 전망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금리 차가 좁혀졌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더 떨어졌다는 것은 채권시장이 경기 둔화 가능성을 크게 본다는 의미다. 채권시장 한 인사는 “장단기 금리 차는 통계청 경기선행지수를 구성하는 요소”라며 “경기 예측에 공신력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금리 차가 2년여 만에 최소 폭 좁혀진 건 경기침체와 마주한 우리 경제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장단기 금리 차는 지난 6월초를 정점으로 축소됐다. 6월7일 0.533%포인트까지 벌어졌다가 8월28일(0.389%포인트)을 기점으로 0.3%포인트대로 내렸고, 10월말부터는 0.2%포인트대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내년 세계 경기마저 꺾일 경우 국내 경기가 반등할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며 “금리 차는 더 좁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채권시장은 최근 성장률 눈높이가 확 낮아졌다. 한 관계자는 “올해 여름만 해도 내년 성장률은 2% 중후반대 전망이 많았지만 이제 2% 초중반대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7%, 2.6%로 제시하며 둔화 우려를 키웠는데, 이마저 높아 보이는 상황이 됐다. “성장률이 2.5% 아래로 낮아질 수 있다”는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예상이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적잖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채권파트장은 “국내 경제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인정하듯 올해보다 내년이 걱정”이라고 했다. 그가 보는 내년 성장률은 2.4%다.
국내 금리가 얼마나 낮은 지는 바다 건너 미국을 보면 확연하다. 전거래일인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3.184%. 만기가 같은 국내 금리보다 0.974%포인트 높은 것이다. 한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10년간 들고 있을 때 수익이 미국보다 적다는 의미다. 미국 장기금리는 연초 2.410%에서 출발, 경기 호황을 업고 급등해 3%를 훌쩍 넘었다. 그 사이 국내 장기금리는 2.489%에서 오히려 더 떨어졌다.
한국은 미국보다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시장금리 역전이 계속되는 건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한·미, 초장기물 금리 격차는 더 커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가 본격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다른 시장 인사는 “반도체 외에 먹거리가 없다는 점이 특히 우려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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