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올해부터 유럽에서는 보고서 비용을 따로 구분해 지급하는 내용의 ‘금융상품투자지침2(Ⅱ)’를 시행하면서 국내 증권사의 보고서 유료화에 불을 지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 유료화가 자리 잡은 것은 영업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외자계 증권사는 개인고객이 없고 법인만 상대하기 때문에 국내 증권사를 통한 개인투자가들이 보고서를 무단으로 배포할 수 없는 구조”라며 “리서치센터에서 생산해내는 보고서는 심혈을 기울인 디지털콘텐츠의 산물인 만큼 공짜여서는 안 되지만, 한국에서는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개인투자가는 물론 주식시장에 관심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증권사 보고서를 볼 수 있다. 회원가입을 하지 않았더라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날그날 발간된 보고서들이 업데이트되고, 이를 무단으로 퍼나르기 때문이다.
MIFIDⅡ 시행에 외국계 증권사 대응
국내에서 보고서 유료화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MIFIDⅡ 때문이다. MIFID는 유럽연합(EU)이 2007년 도입한 금융상품투자지침으로, 2007년 7월 발생한 금융위기를 계기로 기존 지침을 보완한 MIFIDⅡ가 나왔다. 이 제도는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가 증권사로부터 리서치 보고서를 받을 때 매매집행 등 다른 서비스와는 별도의 계약에 따라 구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존에는 보고서 비용을 거래 수수료에 포함해 지불해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증권사의 리서치 품질보다 수수료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자산운용사가 제대로 된 투자 정보를 얻기 어렵고 투자자 보호에도 미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MIFIDⅡ 시행에 따라 영국, 독일 등 유럽 내 금융투자회사들은 보고서 비용을 따로 지급하고 있다.
이는 미국계 증권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통상 미국 증권사들은 현지는 물론 유럽 등 해외 운용사들과 보고서 거래시 비용을 수수료에 포함해 받아왔기 때문이다. 즉, 명목상 보고서 비용을 따로 청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증권사 중 지난 1월 ‘MIFIDⅡ 시행에 따른 조사분석서비스 제공 업무’를 부수업무로 신고한 증권사는 총 9곳이다. JP모간증권(서울지점)을 비롯, 모간스탠리인터내셔날증권, 크레디트스위스증권, 씨지에스 씨아이엠비증권, 도이치증권, 메릴린치인터내셔날엘엘씨증권 등이다. 이들 증권사는 기존에 발간해오던 리서치 보고서에 대해 따로 돈을 받고 거래하는 형태의 영리성을 띠지 않게 하기 위해 조사분석서비스 제공 업무를 부수업무로 신고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증권사들은 여전히 보고서 비용을 수수료에 포함해 받는 것을 관행처럼 여기고 있다”며 “미국 회사들은 리서치 자료를 많이 내고 수입 규모도 큰데, MIFIDⅡ 시행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따로 지급하는 시스템이 정착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보고서 거래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보고서 비용 따로 지급 않을 듯
MIFIDⅡ가 시행되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들이 모두 보고서 비용을 따로 지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보고서 비용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진출한 외자계 증권사들이 조사분석서비스 제공 업무를 부수업무로 신고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럽은 MIFIDⅡ를 통해 올해부터 보고서 비용을 따로 지급하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거래 수수료에 포함시켜왔다”며 “미국에서는 돈을 받는 댓가로 투자판단의 참고자료를 주면 자문업을 하는 행위가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자문업 등록 없이 보고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통해 증권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