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임시정부의 ‘100년 전쟁’

  • 등록 2019-04-12 오전 6:00:00

    수정 2019-04-12 오전 6:00:00

대한민국 건국이념이 3·1만세운동 직후 상하이에 세워진 임시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1948년 공표된 제헌헌법은 물론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정 체제도 이때 채택됐다. 일제침략으로 인한 수난의 민족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어제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으면서 국민들이 감회에 젖었던 이유다.

그러나 그 이후 지금껏 이어진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 내부의 마찰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진다. 임시정부가 좌우연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지도자 중에서 뒷날 북한정권 수립에 관여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이 그런 대립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다. 일본 패망으로 광복을 이루고도 찬탁·반탁으로 나뉘었는가 하면 민족의 비극인 6·25전란의 책임 소재에 있어서도 미묘한 견해 차이가 제기된다. 항일운동 당시의 이념 다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시정부에서 우파 계열에 속했던 우남(雩南) 이승만과 백범(白凡) 김구에 대해 이념적 지지도가 나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두 사람의 활동노선이 서로 달랐던 데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우남이 대외교섭력 확대에 주력했던 반면 백범은 무력투쟁 수단까지 동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정부수립 과정에서도 가능한 지역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해 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견해를 놓고 부딪쳤다. 결과적으로 초대 대통령에 오른 우남의 승리로 끝났고, 백범은 암살로 비운의 종말을 맞고 말았다.

하지만 임시정부 활동으로 따진다면 백범의 역할이 더 컸다.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옮겨다니며 마지막까지 임시정부 간판을 지킨 주인공이 백범이다.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이끌어 임시정부의 위상을 널리 각인시키기도 했다. 백범이 지금도 임정 시절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이유다. 이에 비한다면 우남은 통합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고도 끝내 탄핵으로 퇴진하게 된다. 해방 공간에서 두 사람의 대립이 되풀이된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할 수 없다.

이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정치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하고 있다. 특히 우남에 대해서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고 독재를 폈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심지어 “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공영방송 전파를 탔다. 그의 미국체류 행적까지 추적한 몇 해 전의 ‘백년전쟁’ 영상물과 맥락을 같이 하는 주장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 그를 ‘건국 대통령’으로 추켜세우려던 움직임에 진보진영이 딴지를 걸었던 것이다.

반면 백범은 민족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효창공원을 찾아 그의 묘소를 참배했는가 하면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가 말년에 사저로 사용하던 경교장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과거 보수정권 지도자 어느 누구도 우남의 사저였던 이화장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과 비교된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던 김원봉이 새로 주목받게 된 현실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백범이 사분오열된 임시정부의 당파 통합을 위해 협상을 시도했던 좌파의 대표 인물이다. 김원봉은 그 뒤 김일성 밑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가 10년 만에 숙청당하게 된다. 그를 국가유공자로 서훈하는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가 갈등을 빚고 있으니, 논의가 너무 앞서 나간 게 아닌가 여겨진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의 100년이다. 이러한 갈등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새옷으로 갈아입고 등장하더라도 새로운 역사발전 동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서적 접근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실체적 분석이 필요하다. 정파적 이해에 휩쓸린다면 계속 ‘역사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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