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언어 '훈'에서 벗어나라

훈의 시대
김민섭|246쪽|와이즈베리
  • 등록 2018-12-12 오전 5:04:01

    수정 2018-12-12 오전 5:04:01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강원 원주여고의 교훈은 ‘참된 일꾼, 착한 딸, 어진 어머니’다. 유교적 남성 중심 사상을 반영한 교훈으로 지금 시대상에 비춰보면 다소 고루한 느낌이다. 실제로 원주여고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교훈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5년 전 있었다. 학교 측이 학생·학부모·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교훈 개정 설문조사에서 901명이 찬성하고 402명이 반대했다.

그러나 교훈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 68회 졸업생까지 있던 총동문회에서 이를 반대했다. “교훈은 학교의 가치관, 교육 방향 등 핵심 덕목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학교의 긍지이자 전통”이란 이유에서였다. 개인과 공동체, 나아가 사회에 존재하는 ‘훈’(訓)은 생각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시간강사, 대리운전 기사 등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바라본 한국사회의 이면을 글로 써온 저자가 이번에는 시대를 지배해온 ‘훈’에 주목한다. 한자 풀이대로 ‘가르쳐 깨우치다’란 뜻을 가진 훈은 훈계·훈시·훈육·훈화·훈련·가훈·교훈 등의 단어로 흔하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훈이야말로 “‘계몽의 언어’인 동시에 ‘자기계발의 언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언어이고, 지배계급이 생산·해석·유통하는 권력의 언어이며, 한 시대의 갈망을 집약한 욕망의 언어”라는 것이다.

저자는 훈이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작동한다고 본다. 학교의 훈, 회사의 훈, 개인의 훈이다. ‘순결·정숙·단결·용기’ 등 근대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교훈 아래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면 “남들보다 두 배 더 빨리 출근하고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는 식의 사훈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특별한 ‘훈’을 전시하고 싶은 마음이 부동산에 대한 욕망과 소셜미디어의 과시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낡은 언어로 만들어진 훈이 알게 모르게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시대의 강요로 만들어진 욕망으로만 사는 ‘대리인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원주여고의 예처럼 이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문제를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욕망으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 누구든 “잘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 속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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