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는 패자부활전…"개인은 일자리, 기업은 자금 있어야 재기"

이경춘 초대 서울회생법원장 인터뷰
"현대 경쟁 사회서 도산은 필연적…재기 기회 줘야"
"도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 회생 기회 놓치기도"
회생기업 자금 지원 문턱 너무 높아 회생 어려워
"회생종결 늦으면 낙인효과 발생…정상 경영 방해"
  • 등록 2018-04-16 오전 6:00:00

    수정 2018-04-16 오전 6:00:00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이 지난 10일 서울회생법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작년 3월 회생법원 개원식 때 생긴 일이다. 축하차 참석한 모 국회의원이 이경춘 회생법원장에 물었다. “파산해 보셨어요?” 파산관련 재판을 맡아 본 적 있냐는 의미다. 동석했던 인사가 농으로 받았다. “법원장께 파산해봤냐고 물으면 예의가 아니죠.”

이 법원장인 파산에 대한 사회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한다. “형사해봤냐, 민사해 봤냐고 물었다고 판사에게 형사처벌이나 민사소송을 당해봤냐고 물어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사람들이 ‘파산’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보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법조계에서 도산 사건은 ‘사람을 살리는 재판’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도산’이라는 두 글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주홍글씨다. <이데일리>는 지난해 3월 초대 서울회생법원장에 올라 1년 넘게 회생법원을 이끌어오고 있는 이경춘(59·사법연수원 16기) 법원장을 만나 우리나라 도산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법원장은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법원장실에서 진행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도산제도에 대해 “개인이나 기업에 대한 공적인 구제 제도로서 재기를 목적으로 새로운 생명에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사회적으로 후견적, 치유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도산제도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채무 문제로 음지에서 고생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불안요인이 됩니다. 도덕적 해이로 볼 게 아니라 사회를 건전하게 하는 중요한 절차로 봐야 합니다.”

그는 “경제상황과 무관하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경쟁에서 밀린 기업이나 개인이 생길 수밖에 없어 도산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며 “법원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이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다시 주는 게 도산제도”라고 강조했다.

“나락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발 뻗고 잠 잘 수 있게”

최근 이 법원장의 방에 한 유명 연예인이 방문했다고 한다. 감사 인사를 전하기 싶다는 말에 법원측이 마련한 자리였다.

“회생계획이 인가 된 후 ‘이제야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살아갈 용기를 다시 얻어 열심히 살고 있다’고 고마워 하더군요. 국가가 개인 도산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삶의 나락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죠.”

이 법원장은 “채권자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떠안고 돈을 빌려준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더 이상 채무자의 책임만 강조하고, 갚을 수도 없는 채무의 변제를 무작정 추심하는 문화는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조기에 회생신청을 했으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기업이 막판까지 버티다 너무 늦게 찾아와 결국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업이 채권자들에게 P-플랜을 논의하자고 하면 ‘빨리 P-플랜을 신청해 기업을 되살리자’는 생각 대신 ’회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내 돈만이라도 받아내야 겠다’는 생각부터 하더군요. 오너나 전문경영인이 경영권을 잃을까봐 걱정하다가 실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 (사진=신태현 기자)
“도산 상태서 회생신청 외면시 처벌하는 제도 검토”

회생법원은 경영권 상실을 우려해 회생신청을 꺼리는 기업들을 위해 여러 제도를 운영 중이다. 경영권 보호 지분보유조항(ERP·Equity Retention Plan)이 대표적이다. 회생과정에서 채권자들이 채무를 자본출연으로 전환하면 대주주 보유 지분율이 낮아서 경영권을 위협받는 사례가 많다. ERP는 채권을 출자전환해 신주를 발행할 경우 이를 상환우선주로 발행하는 게 특징이다. 회생절차를 종결하면 기존 대주주는 채권자에게 넘긴 지분을 되살 수 있다. 기업 오너에겐 재기 의지를 북돋을 수 있고 채권자는 보유 지분을 적정 가격에 되팔수 있다.

ERP가 당근이면 ‘부당거래 책임(Wrongful Trading)’제도는 채찍이다. 도산위기에도 회생신청을 하지 않으면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제도다. 영국 등 도산법 선진국이 이미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법원장은 “기업들이 극한 상황에 몰릴 때까지 버티는 도박 대신 적기에 회생절차를 신청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 법원장 “재기하기 위해선 개인에겐 일자리, 기업에겐 자금이 필수”고 강조했다. 그는 회생절차를 밟은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 문턱이 너무 높아 회생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분개했다.

“개인에겐 과도하게 돈을 빌려준 뒤 무리한 채권추심으로 파탄을 일으키고 회생작업 중인 기업엔 돈줄을 막아 회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회생기업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입법적으로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정관리 조기졸업한 STX조선해양 위기 연구 필요해“

최근 일부에서 제기하는 STX조선해양 법정관리 조기졸업 논란에 대해서는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TX조선해양은 해운·조선업황 전체의 장기침체와 저가수주 중심의 영업 관행으로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2016년 5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회생절차를거쳐 지난해 7월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정부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STX조선해양이 지난해 117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자 다시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 법원장은 “회생계획이 인가가 되면 법원은 자금집행에 대한 감독 정도만 한다. 나머지는 경영에 관한 문제다. 현 상황을 회생절차 조기종결과 연결시키는 건 난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 입장에선 기업이 향후 부정적으로 자금을 집행할 가능성이 없다면 회생절차를 종결해 정상적으로 경영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STX조선도 당시 회생계획이 정상적으로 이행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기업이 도산법원의 관장 하에 회생절차 중이라면 시장과 거래 상대방에게 신용의 문제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 법원장은 “환자로 비유하면 병원 치료가 아닌 요양이 필요한 경우엔 입원 대신 좋은 조건 속에서 휴양을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채무자·채권자·금융기관이 합의해 회생계획안을 만들어 이를 인가했어요.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지켜보고 앞으론 정상 영업하라며 회새절차를 조기종결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위기가 반복된 것에 대해선 원인을 속단할 수 없지만 법원 차원의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은

1961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7년 서울지법 남부지원(현 서울남부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 재판장을 역임했다. 이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과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후 지난해 3월 초대 회생법원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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