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동의 타임머신]20년 간 못 이룬 `非메모리의 꿈`..반도체 신성장 동력될까

1997년 말 IMF외환위기 직후 비메모리 육성 논의
반도체시장 70% 차지..메모리보다 성장 가능성 커
삼성전자 EUV 선제 도입..파운드리 초격차 강화
정부 R&D 인력 육성책과 맞물리면 시너지 기대
  • 등록 2019-04-20 오전 4:30:00

    수정 2019-04-20 오전 4:30:00

삼성전자의 화성캠퍼스 EUV 라인 조감도.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비(非)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메모리 반도체 편중현상을 완화하는 방안도 신속히 내놔주시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 11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반도체 분야를 언급하며 비메모리 경쟁력을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D램 메모리 가격이 50% 가까이 급락하면서 메모리에 치중한 우리나라 수출 산업의 취약점을 보완해야한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실제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사실상 끝나고 가격과 수요가 모두 하락세로 접어들자,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의 실적 악화는 물론 올 1분기 중소기업 수출까지 전년동기 대비 4.0% 줄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대비 0.1%포인트 내린 2.5%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반도체 시장 70%는 비메모리 분야

메모리 치중 현상의 부작용이 수출 감소와 성장률 둔화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 비메모리 역량 강화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특히 EUV(극자외선) 기술을 적용한 5나노(nm·10억 분의 1m) 공정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와 거의 동시에 업체 최초로 개발하며 비메모리 ‘초(超)격차’ 전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 이달 안에 7나노 제품을 출하하고 올해 내 양산을 목표로 6나노 제품 설계를 완료할 계획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1·2위를 다투고 있는 메모리 뿐 아니라 비메모리인 파운드리와 인텔이 주도하고 있는 CPU(중앙처리장치) 등 시스템반도체까지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스마트폰의 두뇌격인 모바일 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시리즈로 유명한 퀄컴은 시스템반도체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팹리스입니다. 전체 반도체 산업을 놓고 볼 때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비중은 ‘3대 7’ 정도로 비메모리의 시장 규모가 두 배 이상 큽니다. 반도체 산업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선 비메모리 분야의 육성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사실 시간을 되돌려보면 국내에서 비메모리 분야를 키우자는 얘기는 이미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반도체 업체들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현대그룹과 LG(003550)그룹의 반도체 빅딜 과정에서도 각각 생산과 설계를 맡아 분업하는 방식으로 파운드리를 출범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2000년 3월 당시 산업자원부는 비메모리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파운드리와 팹리스 설립을 지원하겠다며 2002년까지 약 3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비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2010년까지 6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과거 SK하이닉스에서 분리된 이후 매그나칩은 파운드리 분야 세계 8위까지 오르며 201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했지만, 최근 M&A(인수합병)시장에 다시 매물로 나왔습니다. 또다른 파운드리인 DB하이텍(000990)도 세계 시장 점유율이 1% 안팎에 머물고 있습니다.

◇위기가 기회…韓 비메모리 육성할 ‘골든타임’

우리 정부가 20년 전부터 노력해온 비메모리 사업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국내 시장 여건이 미국이나 대만, 중국 등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반도체 설계 회사인 팹리스가 성장하기 위해선 가까운 곳에 생산을 맡길 파운드리가 필요하고, 파운드리 역시 팹리스로부터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언어도 잘 통하는 지역에서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과 대만, 미국 등에서 팹리스와 파운드리 산업이 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반면 메모리의 경우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를 통한 미세공정 개발과 대량 생산, 가격 경쟁력 확보 등이 중요한만큼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경쟁 우위에 있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EUV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했고 정부가 R&D(연구개발) 인력 육성 및 산업 지원에 나선다면 이번만큼은 비메모리 분야의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 TSMC의 설립자로 31년 간 회사를 이끌고 지난해 은퇴한 모리스 창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초 연간 투자 규모를 30% 확대하기로 결정합니다. 또 연구 개발 비용은 20%, R&D(연구개발) 인력도 30%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창 회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투자 확대의 이유에 대해 “1막이 금융위기였고 2막이 글로벌 경기 침체라면 다음 3막은 틀림없이 회복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지금의 위기가 20년 간 이루지 못한 비메모리 분야를 육성할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1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단위=%·자료=트렌드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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