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이 늘어난다]`개선기간` 상장사 3년새 2.5배 급증

올해만 42개사에 48건 개선기간 부여
작년부터 코스닥委도 기심委처럼 개선기간 부여 가능
감사 `의견거절`..개선기간 6개월서 1년 부여로 확대
  • 등록 2019-09-20 오전 5:10:05

    수정 2019-09-20 오전 5:10:05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정지된 채 장기간 ‘경영 개선기간’을 부여받은 좀비 상장회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올 들어서만 42개 상장사에 48건의 ‘개선기간’이 부여됐다. 3년 전보다 무려 2.5배 늘어난 것이다.

까다로워진 회계감사로 ‘비적정’ 의견을 받는 회사들이 늘면서 상장폐지 심사 대상 기업 자체가 증가한 영향도 있지만, 작년부터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코스닥시장위원회(이하 코스닥위)도 기업심사위원회(이하 기심위)처럼 개선기간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개선기간이 늘어난다고 기업이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거래정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투자자들의 자금만 장기간 묶여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차리라 정리매매를 통해 투자금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게 상폐를 시켜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MP그룹, 개선기간 세 차례 부여받아..4년째 거래정지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개선기간이 부여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이날 현재 44개사(코스피 4곳, 코스닥 40곳)로 집계됐다. 2016년까지만 해도 한 해 개선기간이 부여된 회사는 17개사, 17건에 불과했다. 2017년엔 26개사(27건), 2018년엔 37개사(41건)로 점차 증가하더니 올해는 아직 9월 중순에 불과한데도 42개사(48건)에 달한다.

개선기간 부여 사례가 증가한 데에는 상장폐지 사유인 감사보고서 ‘의견거절’ 등 비적정 의견을 받은 회사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 올해 개선기간이 부여된 회사의 80%, 34개사는 3월(12월 결산법인) 작년 사업연도 감사보고서 비적정 의견을 받았다. 올해부터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회사에 개선기간 부여기간이 최대 6개월에서 1년으로 늘어나면서 적정의견을 받아 거래가 재개된 솔트웍스와 영신금속을 제외한 32개사는 내년 4월 또는 7월(6월 결산)까지 개선기간을 갖게 됐다.

개선기간을 확대한 것은 상장사의 재감사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지만 악용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횡령 등 각종 상장적격성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해도 일단 비적정 의견을 받으면 관련 심사가 내년 4월 이후로 일제히 미뤄지기 때문이다. 화진(134780)은 임원들의 횡령·배임으로 작년 기심위와 코스닥위 모두 상폐를 결정했으나 이의신청으로 올 연말까지 개선기간이 부여됐다가 올 3월 감사 의견거절을 받자 개선기간이 내년 4월 9일까지로 연장됐다. 지투하이소닉(106080), 포스링크(056730)도 각각 작년말, 올 2월 횡령·배임이 발생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됐는데 3월 의견거절이 나오면서 일괄적으로 내년 4월 9일까지 개선기간이 부여됐다. 횡령 등에 대한 심사는 그 뒤로 밀린 것이다. 상장 유지 여부와 관련해 주요 이슈가 발생해도 한국거래소가 이에 대해 조속히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년 3월부터 코스닥위가 자율권 확대를 이유로 개선기간을 부여할 수 있게 된 것도 개선기간 사례를 늘린 이유 중 하나다. 기심위에서 상폐 결정이 내려졌으나 코스닥위에서 개선기간이 부여된 건수는 최근까지 총 16건(14개사)에 달했다. 그전까진 기심위에서만 개선기간 부여가 가능했고 상폐 결정이 내려지면 코스닥위에선 개선기간 부여 없이 상폐 여부만 최종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MP그룹(065150)은 3년간 세 차례의 개선기간이 부여됐다. 2017년 7월 횡령·배임으로 그 해 10월 1년간의 개선기간을 부여받은 후 작년 10월 기심위에서 상폐 결정이 내려졌으나 코스닥위원회에서 4개월간의 개선기간을 부여했다. 코스닥위원회는 올 5월 상폐 결정을 내렸으나 회사의 이의신청에 또 다시 내년 2월까지 8개월간의 개선기간을 확보했다 .그러는 동안 MP그룹 투자자 1만 여명은 3년 가까이 거래가 정지된 주식을 붙들고 끙끙 앓게 생겼다.

거래소 책임 회피냐, 기업 회생 위한 거냐

거래소가 감마누(192410)와 상폐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섣불리 상폐 결정을 내리기 부담스러워 개선기간을 부여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거래소가 즉각 항소하긴 했으나 1심 법원에선 감마누가 적정 의견을 받아낼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줬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거래소는 이 밖에도 작년에 상폐 결정을 내린 모다(149940), 에이앤티앤(050320), 파티게임즈(194510) 등과도 비슷한 이유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개선기간을 늘린다고 기업 회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작년에 개선기간이 부여된 상장사 37개사 중 17개사가 상장 폐지 결정이 났다. 10개사는 아직 상폐여부가 결정되지 않았고, 10개사는 상장유지 결정이 내려졌다. 개선기간 후에도 살아남는 기업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결국 상폐될 기업에 산소호흡기를 씌우고 연명치료하는 셈이다.

개선기간 중에도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등의 발행(경영권 변동 시엔 실질심사 사유 추가)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식 거래가 재개될 것이라며 기존 주주나 그 외 투자자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작년 상폐된 L사는 개선기간 중 주주를 상대로 가짜 전환사채권을 담보로 제공하며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거래소는 주식 거래가 정지됐기 때문에 신규 투자자 피해가 없다며 개선기간을 늘리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기존 투자자들은 한없이 자금이 묶이면서 불확실성만 키우게 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장기간 기다렸다가 상장유지가 되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장폐지라도 정리매매 등을 통해 빠르게 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자금을 장기간 묶이게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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