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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사형수 ‘474번’. 그는 존재하지 않는 자였다. 지문은 등록돼 있지 않았고, 주민번호도 없었다. 목욕탕에서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12명을 죽인 혐의로 체포됐다. “모든 혐의를 인정합니다. 공범은 없습니다.” 빨리 사형을 집행해달라며 조용히 감옥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어느 날 찾아온 인물 신해경으로 인해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탄탄한 문장력으로 주목받아온 작가 정용준(37)이 신작 ‘유령’(현대문학)으로 돌아왔다. 한국문학에서 가장 현대적이면서 첨예한 작가를 선정해 경장편소설을 선보이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편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정 작가는 “‘악’의 본성보다 ‘인간’에 대해 쓰려 했다”며 “인간의 행위나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해석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474번’의 범행 동기는 오리무중이지만 교도관 윤의 진심 어린 배려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소설은 시작부터 474번에 판결을 내리고 정의롭게 집행한다. 의문을 던진 부분은 그것이 정말 악이라면 그런 부류의 인간을 그토록 간단하게 이해하고 처벌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거다. 형법은 엄밀한 의미로 474번을 벌하지 못했다. 사형을 원하는 악인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될 테니까 말이다.”
어느덧 등단한 지 10년이 됐다.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장편소설 ‘바벨’(문학과지성사), ‘프롬 토니오’(문학동네) 등을 통해 독자를 만나 왔다.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부탁한 것이 있다. 늘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작가가 되자는 거다. 변덕이 심하고 취향이 여럿인데 그때그때 정직하게 떠오르는 작의와 모티프에 충실한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