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좇는 대체투자]해외서 외면한 B급·C급 투자처에 달려들기도

전문성·정보력 부족
10~20년 장기투자가 대부분인데
가치산정 위한 기준지표도 없어
투자실패땐 "왜 안 따라갔냐" 문책
국민연금 등 대형기관 따라하기 급급
  • 등록 2019-03-20 오전 5:20:01

    수정 2019-03-20 오전 9:30:04

[이데일리 송길호 기자] “다른 기관 어디에서 (투자에) 들어갑니까” A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대체투자 투자심의위원회에 들어갈때마다 녹음기를 틀어놓듯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심의회 전 투자보고서를 면밀히 작성하고 리스크관리부서에서 심사보고서도 별도로 작성하지만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앵커 투자자(Anchor LP)’의 참여 여부라는 얘기다. 그는 “국민연금 등 국내 다른 큰 기관이 들어가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투자에 대한 소신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형 투자기관 따라하기 급급

대체투자가 유행을 좇아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건 투자 특성상 그만큼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체투자는 기본적으로 돈을 장기간 묻어두는데 대한 대가로 수익을 얻는 방식(유동성 프리미엄)이다. 하지만 이 기간 그 가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일반화된 벤치마크가 없어 모니터링과 평가, 성과 분석이 녹록지 않다. 이 때문에 주변 투자자의 흐름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과 같은 선도 투자자가 앵커 투자자로 나서게 되면 그만큼 투자결정이 용이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 국민연금이 1년에 대체투자로 신규 집행하는 금액은 대략 30조원, 건수로는 80건 정도 된다. 일반 연기금이나 공제회 한 기관 당 통상 10건 미만을 투자하는 만큼 해당 기관 입장에선 국민연금이 투자한 분야 중 이를 선별해 따라 들어가면 큰 무리는 없는 셈이다. B공제회 CIO는 “국민연금이 한번 스크린 한 걸 고르게 되면 마음은 편하다”고 토로했다.

설령 투자에 실패해도 이 같은 앵커 투자자 따라하기는 일정부분 면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연기금의 한 CIO는 “2∼3년에 한 차례씩 받는 정기감사 외에 수시감사에 시달리고 있다”며 “감사원 조차 수익률이 저조하면 ‘왜 국민연금 따라가지 않았느냐’고 다그칠 정도”라고 전했다.

이는 그만큼 투자기관의 전문성과 정보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반영한다. 정삼영 대체투자연구원장은 “제한된 정보내에서 과거의 성공 케이스만을 찾다보니 나타나는 문제”라고 말했다. 신성환 홍익대(경영학과) 교수는 “부동산 인프라 등 대규모 대체투자는 네트워크 비즈니스로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하다”며 “주류에 끼지 못하면 정보격차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체투자 붐으로 대기자금이 크게 밀려들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B운용사 임원은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운용사로서도 투자자금을 소화하기 위해선 다소 리스크가 있어도인기 있는 자산군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C공제회 CIO는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딜은 현지에서 2∼3차례 돌던 B급, C급이 많다.”며 “그래도 대기자금은 계속 배정되는 만큼 이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들어가는 기관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B급·C급이 소화된다” …부실 투자 잉태

유행에 따라 춤추는 묻지마 투자는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투자 쏠림이 발생하면 투자대상이 되는 기초자산은 내재가치 이상으로 고평가되게 마련이고 그 결과 수익률이 떨어지거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과거의 실패사례를 보면 극명해진다. 2000년대 중반 저축은행권에서 우후죽순 진행됐던 부동산 PF대출은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의 주범이 됐다.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파생상품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우리·신한은행, 농협중앙회 등 대형 기관들에 수조원대의 부실을 떠안겼다. 선박·항공기 분야의 과잉투자도 부실을 잉태하고 있다. C운용사 임원은 “선박은 시장 자체가 무너졌고 항공기는 소형기종이 메인인데 경쟁적으로 대형기종만 투자하려다보니 쏠림현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요즘 인기있는 부동산이나 인프라투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부동산 투자는 평균 5년 이상 장기투자인 만큼 펀드만기 때 부동산가치가 하락하게 되면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특히 해외부동산의 경우 환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해외인프라 분야도 10년· 20년 장기투자인 만큼 설령 해당 정부가 보증을 한다고 해도 정치 사회적 요인의 변화로 계약조건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 할 수 만은 없다.

전문가들은 결국 쏠림현상은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투자역량의 강화를 주문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국내 대체시장은 시장사이클과 무관하게 계속 늘고 있다”며 “리스크-리턴 프로파일을 보면 공급여력이 제한된 상태에서 쏠림현상이 지나쳐 향후 시장여건이 변화할 경우 투자손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신성환 교수는 “대체투자를 한다고 하면 기업구조조정이나 부실채권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들어가 국내 경제 전체에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이 돼야 하는데 너무 편한 투자만 하려는 것 같다”며 “투자대상을 적극 발굴하고 전문 운용역들의 능력을 제고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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