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예술지원]② 현장 목소리 귀 닫은 '행정중심 사업'

예술지원사업 '공모' 중심 천편일률화
행정적 절차, 예술현장 요구 반영 못해
"창작은 곧 향유라는 생각의 전환 필요"
  • 등록 2019-04-16 오전 5:56:10

    수정 2019-04-16 오전 5:56:10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연극은 배우·스태프 등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공연을 기획할 수 없다. 지원 결과 발표 전에 극장 대관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공연을 준비하다 지원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공연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대학로에서 연극기획자로 활동했던 한 공연계 관계자는 창작지원 없이는 공연이 힘든 연극의 현실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창작지원 결과가 3월에는 나와야 공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서울문화재단의 공모 지연 결정은 이러한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라고 말했다.

예술가를 위해 추진하는 예술지원 사업이 오히려 예술가의 반발을 사고 있는 데에는 예술과 행정의 서로 다른 온도 차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 중심으로 지원 사업이 추진되다 보니 예술가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예술지원 사업은 크게 창작·향유·교육으로 분야를 나눠 추진된다. 공정한 지원을 위해 사업 대부분이 공모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예술가 및 단체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등 예술지원 사업 담당 기관에서 내는 공모계획에 따라 지원을 신청하고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공연 준비 과정이 행정적 절차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서울문화재단이 최근 연 간담회에서도 이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한 연극 연출가는 “우리는 이런 공모에서 행정심사가 언제 끝났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냥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며 “공모와 관련한 행정 절차를 자세하게 알려줘야 예술가들도 알아야 지원에서 떨어졌을 때 어떻게 공연 준비를 할지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지원사업이 1년 단위의 ‘단년도 사업’으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공연 준비기간으로 1년은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범철 서울연극협회 부회장은 “좋은 공연장의 경우 대관도 빨리 차기 때문에 적어도 전년도 말에 사업 결과가 발표돼야 공연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며 “지원금 집행은 당해연도에 하더라도 선정만 전년도에 한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좋은 공연이 나오면 사람들이 그걸 즐기게 되는 것처럼 예술의 창작과 향유는 연결돼 있는데 지금의 예술지원 사업들은 창작·향유·교육 등으로 다 나뉘어져 있어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각 사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정책의 효과도 커지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공연의 수익이나 단체의 재정자립도로 결과를 평가하는 행정적 체계가 예술을 종속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은 오는 2020년까지 예술계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지원제도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올해부터 공연예술단체가 최대 3년간 공연을 제작할 수 있도록 최대 2억원을 지원하는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을 신설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모 제도 일색으로 천편일률화돼 있는 지원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평론가는 “공모제도는 예술 현장과 행정기관 사이의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있는 것인데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를 지나면서 오히려 공모제도가 더 강화됐다”며 “이러한 악순환을 깨지 않고서는 행정 시스템로 인한 예술계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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