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유가가 걱정되지 않는 이유

  • 등록 2019-01-16 오전 5:22:00

    수정 2019-01-16 오전 5:22:00

[이종우 이코노미스트]1998년 영국의 유력 경제 주간지가 석유에 관한 특집 기사를 냈다. 결론은 유가가 5달러까지 떨어질 거란 전망이었다. 전 세계에서 중동 내륙지역이 석유를 가장 싸게 생산
하는 곳인데 이 곳의 생산원가가 배럴당 4달러이므로 여기에 약간의 마진을 더한 5달러가 적정가격이란 얘기였다. 당시는 아시아 외환위기로 석유 수요가 줄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에서 헤매고 있던 때였다.

유가는 이 기사가 나온 후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1999년 말까지 1년 동안 150%가 상승해 배럴당 25달러가 되더니 2005년에 50달러, 2008년에는 150달러가 됐다.

2008년 3월에 골드만삭스가 유가 전망을 내놓았다. ‘최악의 경우’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1~2년 내에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넘을 거라고 전망했다. 신흥국 경기 호황으로 석유 수요가 급증한 반면 공급은 답보상태에 있어서가 이유였다. 금융위기 때 36달러까지 떨어졌던 유가가 2011년에 다시 100달러대를 회복했지만, 2014년 말에 다시 하락해 결국 30달러대 초반까지 밀렸다. 엉터리 전망을 내놓기는 우리나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기관이나 똑같은 것 같다.

유가가 한때 배럴당 40달러 중반까지 하락했다. 작년 9월 80달러에 육박하던 상황에서 갑자기 하락을 시작해 불과 석 달 만에 절반 가까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유가 하락은 수요 둔화와 공급 증가가 맞물린 결과다. 세계에서 석유를 제일 많이 수입하는 중국의 경제 지표가 좋지 않다. 유로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건상 석유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급은 반대로 계속 늘었다. 작년 12월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하루 12만3000배럴로 늘었다. 셰일오일 생산량이 사상 최초로 하루 800만 배럴을 넘어선 것이다. 기존 산유국의 생산도 늘었다. 러시아가 대표적인데 사상 최대의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의 감산 합의가 시행되는 시점까지 현재 분위기가 바뀌기 힘들 걸로 보인다.

유가가 하락했지만 과거와 달리 경제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경제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는 세계 경제가 인플레에 시달리던 때였다. 물가만 높은 게 아니라 인플레와 경기 둔화가 맞물린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었다. 어떤 나라건 정부의 모든 역량을 물가 안정에 맞출 수밖에 없었는데 미국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0%까지 인상할 정도였다. 유가 하락은 이런 악순환을 끝내는 계기가 됐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자 1982년부터 인플레가 진정됐고 1985년에는 안정국면으로 들어갔다. 인플레를 막기 위한 극단적 정책들이 하나 둘 해제됐고 금리가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이 활성화됐다.

2000년대는 인플레 공포가 사라졌다. 경기가 둔화될 때마다 디플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물가가 낮아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올라가는 상황이 벌어져도 물가 상승률이 4%를 넘지 않았다. 지금도 세계 경제는 2000년대 경제 구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선진국 경제가 10년 가까이 확장을 계속해도, 미국의 실업률이 50년 내 최저치까지 떨어져도 물가 상승률이 2%를 크게 넘지 않는다. 그래서 유가가 80달러까지 올라가도 또 몇 달 후에 절반으로 떨어져도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은 몇 개의 특징이 있다. 약간의 수급 불균형에도 가격이 민감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변동성이 대단히 크다. 유가가 석 달 사이에 절반 가까이 하락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반면 한번 균형점에 도달하면 장기간 가격이 유지된다. 1982년 이후 15년 동안 유가가 10달러를 벗어나지 못했던 적도 있다.

앞으로 유가는 상당기간 50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일 걸로 전망된다. 상당기간이란 최소한 올해 말까지를 의미한다. 수년 전 높은 유가로 인해 공급 규모가 늘어난 부분이 빠르게 해소되기는 힘들다. 10년에 걸친 경기 확장기간에도 크게 늘지 않았던 석유 수요가 갑자기 늘어날 수도 없다. 이 둘을 감안한 균형점이 현재 가격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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