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 1952년 8월 제2호 면허를 취득한 고려증권과 1953년 제3호를 취득한 영남증권, 제4호의 국제증권, 제5호 동양증권이 차례로 출범했지만 대한증권보다 3년 이상 늦은 후발주자들이다.
1953년 대한증권 등 5개 증권사들은 본격적인 영업 전개를 위해 증권거래소 설립에 뜻을 모았다. 같은 해 11월 18일 사단법인 대한증권업협회 설립인가를 받고 11월 25일 대한증권(현 교보증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강산이 일곱 번 바뀌는 동안 증권업에 있으면서 교보증권을 덮친 위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을 떠올리며 위기 때마다 성공적인 극복 스토리를 써냈다.
실제로 교보증권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적지 않은 증권사들이 폐업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적절한 리스크관리 경영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를 발판 삼아 1999년 코스닥 상장 3년 만인 2002년 코스피로 이전하는 등 괄목할만한 경영활동을 펼쳤다.
김해준 교보증권 대표이사는 “수많은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재도약의 기회로 삼은 임직원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현재의 교보증권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창립 70주년을 맞은 올해를 기점으로 최초의 증권사를 넘어 최고의 증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