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라운지]④70년 자본시장 굴곡을 함께한 '산증인' 교보증권

1949년 대한증권 첫 업무…창립 70주년
IMF 외환위기 거치며 ‘산증인’ 자리매김
  • 등록 2019-02-21 오전 5:10:03

    수정 2019-02-21 오전 5:10:03

국내 증권업 1호 허가증 (사진=교보증권)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교보증권은 1949년 11월 22일 대한증권이라는 이름으로 첫 업무를 시작했다. 증권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기. 국내 증권업 1호를 취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송대순 사장(초대 발기인)의 열정과 김도연 초대 재무장관의 이해로 대한증권은 국내 증권업 면허 1호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1952년 8월 제2호 면허를 취득한 고려증권과 1953년 제3호를 취득한 영남증권, 제4호의 국제증권, 제5호 동양증권이 차례로 출범했지만 대한증권보다 3년 이상 늦은 후발주자들이다.

1953년 대한증권 등 5개 증권사들은 본격적인 영업 전개를 위해 증권거래소 설립에 뜻을 모았다. 같은 해 11월 18일 사단법인 대한증권업협회 설립인가를 받고 11월 25일 대한증권(현 교보증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대한증권업협회 설립 이후 증권회사가 급속히 늘고 거래도 활발해지자 대한증권은 증권거래소 설립을 위해 힘을 쏟았고 마침내 1956년 3월 3일 증권거래소 첫 문을 여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1994년 교보생명으로 피인수되며 현재의 교보증권으로 탈바꿈했다. 송대순 초대 사장부터 현(現) 김해준 사장에 이르기까지 19명의 사장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원조의 맥을 이어온 셈이다.

강산이 일곱 번 바뀌는 동안 증권업에 있으면서 교보증권을 덮친 위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을 떠올리며 위기 때마다 성공적인 극복 스토리를 써냈다.

실제로 교보증권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적지 않은 증권사들이 폐업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적절한 리스크관리 경영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를 발판 삼아 1999년 코스닥 상장 3년 만인 2002년 코스피로 이전하는 등 괄목할만한 경영활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최초 타이틀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회사 관계자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발 빠르게 신(新)사업을 도입하고 고객 중심의 조직문화를 펼치려고 노력한 점이 좋은 결과로 다가왔다”고 설명한다.

김해준 교보증권 대표이사는 “수많은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재도약의 기회로 삼은 임직원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현재의 교보증권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창립 70주년을 맞은 올해를 기점으로 최초의 증권사를 넘어 최고의 증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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