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울면 떡하나 더준다" 깨야 금융선진국 간다

  • 등록 2020-01-29 오전 4:00:00

    수정 2020-06-23 오후 4:41:56

[이데일리 권소현 증권시장부장] 글로벌 금융위기때 홍콩 금융업계는 유례없이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당시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부지기수였지만, 특히 리먼브러더스의 미니본드가 문제였다.

미니본드는 발행사가 기업의 부도위험을 담보로 일정 수익을 보증해주는 상품으로 일종의 파생상품이었다. ‘본드’라는 이름 때문에 저위험 상품인줄 알고 무려 3만3000명에 달하는 홍콩 개인투자자들이 총 120억홍콩달러를 리먼브러더스의 미니본드에 투자했다. 하지만 리먼 파산으로 대거 손실이 나자 투자자들은 이를 판매한 은행이 손실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항의했다. 이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고 일부는 은행을 상대로 개별 소송에 나섰다.

불완전판매 문제가 10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홍콩의 16개 은행과 홍콩 증권선물위원회, 금융관리국은 투자자 2만9000여명에게 최소 6억홍콩달러를 보상해주기로 결정했다. 당시 한화로 1조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홍콩 언론은 세계 금융역사상 최대 규모의 보상이라고 연일 보도했다. 이후 홍콩에서는 불완전판매로 인한 투자자들의 손실이 대거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적은 없었다.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홍콩 금융당국의 대책도 효과가 있었겠지만 홍콩 시민들의 자각도 컸을 것이다.

2008년 홍콩 리먼브러더스 미니본드 투자로 손실을 본 투자자가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2008년 키코(KIKO)에 이어 2013년 동양그룹 기업어음(CP),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에 이어 2020년 라임펀드 사태까지 줄줄이 이어졌지만 금융상품만 달라졌지 원인과 결과는 똑같다.

금융상품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나 리스크 판단 없이 비이자수익에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드라이브를 걸고 보는 판매사, 고객에게 권하면서 본인조차도 제대로 상품의 특성을 파악하거나 분석하려 하지 않는 금융사 프라이빗뱅커(PB), 자신의 돈을 투자하는 건데도 판매사 직원의 말만 믿고 상품 약관을 들여다보지 않은 가입자, 사고 조짐이 보였는데도 수수방관하다 사태가 터지면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급급한 감독당국.

불완전판매 사태가 터진 이후 대응방식도 비슷하다.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이 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을 하면 금융사에 배상하라 판결을 한다. 그러면 판매사는 회사 평판이나 신뢰도를 감안해 군말 않고 배상해준다. 금융당국은 대책이라며 강력한 규제를 내놓는다. 보통은 상품 가입 절차를 더 깐깐하게 하거나 아예 위험한 금융상품에 대한 판매를 막는 식이다.

그렇게 한동안 불완전판매 이슈는 진정되는 듯 하다 또 상품만 바꿔 발생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바로 투자자들의 인식 변화다.

자산가건 서민이든 쉽게 번 돈은 없다. 모두에게 피 같은 돈이다. 이런 돈을 투자하는데 꼼꼼하게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손실 안 난다”와 같은 뜬구름 잡는 말만 듣고 투자하는 양태 자체를 고쳐야 한다.

금융당국뿐 아니라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자 교육과 투자문화 조성에 나설 필요가 있다. 투자하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경제지식을 얻을 기회를 제공하고 투자하려면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는 인식도 심어줘야 한다. 금융사 PB는 상품을 골라주는 사람이 아니라 의견을 주는 사람이고, 투자에 대한 판단은 최종 본인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울면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이 있다. 이런 식으로 잘 모르고 투자했다는 이유로 손실이 날 때마다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게 통한다면 매번 투자자들은 울며 떡 하나 더 달라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바뀌지 않고는 한국은 영원한 금융후진국에 머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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