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은행에 출연금 손 벌리는 ‘관제 페이’ 갑질

  • 등록 2019-06-27 오전 6:00:00

    수정 2019-06-27 오전 7:45:18

정부가 제로페이 운영을 맡을 특수목적회사(SPC) 설립에 들어가는 밑천을 시중은행들에 요구했다고 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제로페이 운영법인 설립준비위원회 명의로 최소 10억원 이상씩의 설립 출연금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중기부는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은행들의 입장에선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사실상 ‘강제 모금’과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소상공인들의 결제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만든 제로페이에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100억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부었다. 올 추경에도 76억원이 편성됐다. ‘관제 페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자 이를 회피하려고 추진하는 게 제로페이 SPC다. 외형상 운영을 민간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설립 비용을 요구하고 있으니, ‘관제’ 오명을 벗겠다고 또 다른 ‘관치’를 저지르는 격이다.

난처하게 된 건 은행들이다. 서로 등 떠밀린 끝에 이미 수십억원을 투입했는데도 추가로 출연금까지 내라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사업성만 생각하면 제로페이로 벌어들일 수 있는 결제수수료 이익이 거의 없으니 출연금을 내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작은 성의’라도 표시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지 않을 것이다. 속앓이가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제로페이는 이미 애물단지가 돼버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장에 나온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 10일까지 제로페이 사용건수는 36만 5000건에, 금액으로도 57억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공무원을 동원하고 민간업체에 수당을 주는 등 안간힘을 쓴 결과다. 같은 기간 49억건에 266조원에 달하는 신용카드, 32억건에 74조원의 체크카드와는 비교할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초라하다.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명분 외에는 사용하기 불편하고 다른 신용카드에 비해 별다른 메리트도 없다. 설사 앞으로 ‘관제 페이’ 꼬리표를 뗀다고 해도 활성화될지는 의문이다. 이번 출연금 요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민간에 무작정 돈을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는 것과 같다. ‘권력 갑질’이요, 청산해야 할 적폐다. 사실상 실패한 제로페이에 언제까지 미련을 두려 하는가.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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