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헬조선의 ‘입춘대길’

  • 등록 2019-02-01 오전 6:00:00

    수정 2019-02-01 오전 7:18:34

해마다 연초에 품었던 사회적인 기대와 희망이 허물어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대 수준보다는 세상이 원래 어지럽게 돌아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벌써 오래전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아무리 멋있는 얘기를 늘어놓아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그런 결과다.

이제 첫 달을 보내고 두 달째를 맞는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실망의 연속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법정구속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지난 대선 당시 댓글을 조작해 여론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물론 견해는 엇걸린다. “당연한 귀결”이라며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판사들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성토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지난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을 때와는 서로 뒤바뀐 반응이다.

경제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현재 시행되는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돌아서면 금방 딴소리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경제각료나 청와대 참모들이 기업인들과 소통을 강화한다고 하면서도 후속 처리가 겉도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건물마다 빈 점포가 늘어나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길거리를 떠도는 데도 보여주기 위주의 시늉에 그치기 일쑤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목표가 달성됐다고 하지만 올해도 또 이룰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세계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피해갈 수는 없겠으나 그 결과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팽배하다. ‘삽질 경제’의 폐해를 거론하던 정부가 예외를 인정하면서까지 무더기 토목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서도 위기감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경쟁의 기본 원칙이나 상식을 앞세우는 분위기도 아니다. 정의를 내세우고 공정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편법과 억지가 난무한다. 이번 드루킹 사건에서도 검찰·경찰이 제 역할만 했다면 굳이 특검까지 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국정을 수행하는 장관들도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의원들은 재판에 은근히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심지어 독립유공자 선정에도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정황이 제기된다. 여기에 귀족노조도 고용세습의 특혜를 고집하고 있다. 세상이 온통 연줄과 기득권에 얽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니만큼 ‘헬조선’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쉽게 사라질 수가 없다. 기댈 곳 없는 ‘흙수저’ 젊은이들에게만 국한된 불만과 한숨이라고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이제 설 연휴가 시작되지만 차가운 고시방에 웅크리고 지내면서도 진작에 귀성을 포기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처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왜 동남아로 가지 않느냐”는 힐난까지 들어야 한다면 오죽 착잡할 것인가. 지도층의 자녀들이 유학·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경우가 잦다고 해서 아무나 해외로 옮겨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이다. 이러한 발상에서 우러나오는 정책이라면 현실과 동떨어지기 마련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드루킹 판결과 관련해 여권 수뇌부에서 “정치가 싫다”는 언급까지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혹시 판결에 불만이 있다고 해도 올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이 먼저다. 박근혜·이명박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연달아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의 심사를 조금이라도 헤아려 봤는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이번 설 연휴도 편안한 마음으로 조상님을 모시기는 어렵게 됐다. 미세먼지에 구제역과 홍역까지 겹쳤으니 그만한 핑계도 없을 것 같다. 연휴에는 새봄을 맞이한다는 입춘도 끼어 있지만 예년처럼 ‘입춘대길’이라는 축원문을 대문 앞에 써 붙여야 할지도 머뭇거려진다. 그래도 진정한 황금돼지 해의 시작이다. 서로 웃는 얼굴로 새날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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