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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광화문광장 사업 토론회가 광장을 만든다는 걸 전제로 여는 거잖아요. 박원순 시장이 예산까지 요구한 마당에 토론회를 여는 것은 답정너(상대방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행태에 대해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고 비꼬는 의미의 신조어)가 아니고 뭐겠어요.”
지난 15일 광화문 광장 관련 찾아가는 토론회에서 만난 주부 A씨는 흥분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달 중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대한 첫 시민소통에 나선지 불과 사흘 만에 박 시장이 서울시-더불어민주당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한 참석자는 “토론회가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도 했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 자체도 불만이지만 언행 불일치에 대한 불신이 더 커보이는 발언이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복원 계획 자체가 “답정너”라고 꼬집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 설계공모의 큰 조건 세 가지는 월대 복원, 경복궁의 축을 광장까지 포함하는 것, 지하 통합개발 등이었다”며 “고유의 조건이 기본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에 대한 시민 소통에 나섰지만, 막상 토론회에 가보면 여전히 불통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광화문광장 조성과 궁궐 앞터 복원의 필요성, 광장 확대로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기본권과 생활권 침해 문제 해결방안 이 세 가지는 한 달여간 열린 토론회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단골 질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저 듣기만 한다. 토론회 주최자로서의 역할 그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올 연말까지 7번을 더해 총 14차례의 시민소통 일정을 추진한다. 내달 중순 시민 대토론회를 마무리한 뒤 새로운 광화문광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반대자의 지적과 비판을 듣기만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시민소통의 횟수를 늘려도 반대 의견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형식적인 소통에 그쳐서일지도 모른다. 시민소통 행보가 구색 맞추기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결국 서울시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소통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새겨듣고 지금부터라도 반대편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설득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행 불일치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예산처럼 결론이 난 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서 긴 호흡으로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