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소통만으로 충분치 않은 광화문광장사업

  • 등록 2019-11-25 오전 4:35:00

    수정 2019-11-25 오전 4:35:00

서울 광화문 광장.(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광화문광장 사업 토론회가 광장을 만든다는 걸 전제로 여는 거잖아요. 박원순 시장이 예산까지 요구한 마당에 토론회를 여는 것은 답정너(상대방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행태에 대해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고 비꼬는 의미의 신조어)가 아니고 뭐겠어요.”

지난 15일 광화문 광장 관련 찾아가는 토론회에서 만난 주부 A씨는 흥분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달 중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대한 첫 시민소통에 나선지 불과 사흘 만에 박 시장이 서울시-더불어민주당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한 참석자는 “토론회가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도 했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 자체도 불만이지만 언행 불일치에 대한 불신이 더 커보이는 발언이다.

전문가들도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의 논의 내용, 과정에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마찬가지다. 김은희 도시연대정책연구센터 센터장은 이달 중순 열린 도시분야 전문가 토론회에서 “2016년부터 광화문시민위원회에서 광화문광장 전면 보행화, 월대 복원 등을 논의했는데, 이제 논의 과제를 우리 사회에 저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광장이 필요한지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어떻게 소통할지 방안이 없다. 당분간 (논의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쓴소리를 남겼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복원 계획 자체가 “답정너”라고 꼬집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 설계공모의 큰 조건 세 가지는 월대 복원, 경복궁의 축을 광장까지 포함하는 것, 지하 통합개발 등이었다”며 “고유의 조건이 기본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에 대한 시민 소통에 나섰지만, 막상 토론회에 가보면 여전히 불통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광화문광장 조성과 궁궐 앞터 복원의 필요성, 광장 확대로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기본권과 생활권 침해 문제 해결방안 이 세 가지는 한 달여간 열린 토론회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단골 질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저 듣기만 한다. 토론회 주최자로서의 역할 그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또다시 자충수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 1일 시의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집행할 공사비 601억원을 배정하면서다. 서울시는 예산이 공개되자 즉각 “시민소통 결과에 따라 사업방향이 결정되면 조속히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예산을 편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예산 배정 자체가 이미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조성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시기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서울시의 거듭된 공언이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다. ‘답정너’라는 논란의 불씨조차 남기지 않으려면 착수 시점이 불확실한 사업보다 시민들이 필요한 분야에 예산을 배정해야 하는 게 맞다.

서울시는 올 연말까지 7번을 더해 총 14차례의 시민소통 일정을 추진한다. 내달 중순 시민 대토론회를 마무리한 뒤 새로운 광화문광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반대자의 지적과 비판을 듣기만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시민소통의 횟수를 늘려도 반대 의견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형식적인 소통에 그쳐서일지도 모른다. 시민소통 행보가 구색 맞추기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결국 서울시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소통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새겨듣고 지금부터라도 반대편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설득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행 불일치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예산처럼 결론이 난 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서 긴 호흡으로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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