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면 성별 아는데", "22주 후라도 필요하면"…낙태시점 논란

태아 성별 안 후 낙태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 제기
헌재 22주 기준 제시…충분히 고민할 시간여유 감안
"도식적 구분보단 낙태숙려 필요…상담으로 출산 유도"
  • 등록 2019-04-24 오전 6:09:00

    수정 2019-04-24 오전 7:31:19

임신한 여성과 아이 신발(사진=픽사베이 제공)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낙태죄가 폐지 수순을 밟게 되면서 낙태 가능 시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 부여 시점과 산모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어디에 중점을 맞춰야 하느냐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2주 이내를 기준으로 제시했지만, 15주면 태아 성별을 알 수 있어 이를 확인한 뒤 낙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임산부 건강 보호 위해 초기 결정 필요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인공임신중절실태조사에 따르면 낙태 수술 시기는 평균 6.4주로 대체로 임신 초기였다. 누적비율로 보면 임신주수 △4주 이하 31.5% △8주 이하 84.0% △12주 이하 95.3% 등이었다.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낙태로 인한 모성 사망의 상대적 위험도는 임신 8주 이후 각각 2주마다 두 배로 증가하기 때문에 낙태로 인한 여성의 위험성을 낮추려면 가급적 임신 초기에 낙태 시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는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와도 생존할 수 없는데다 임산부의 건강에도 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임신 12주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 헌재는 22주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22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다. 전문가로부터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얻으면서 숙고한 후 임신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성별 알게 된 후 낙태 더 늘어날라

그러나 15주만 되어도 태아의 많은 것이 결정된다. 키 16~18㎝, 몸무게 120g 정도로 초음파로 성별을 구별할 수 있다. 폐와 심장이 가슴으로 내려가는 등 내장기관이 제대로 자리 잡으며 훨씬 사람다워진다. 불완전하지만 뇌가 발달해 외부 자극에 대한 쾌감과 불쾌감, 불안, 초조 등의 기본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시기다.

이 때문에 22주까지 기다렸다가 임신 중단을 선택하는 것은 살인이라는 보는 쪽이 있다. 특히 기대했던 성별이 아닐 경우 출산이 아닌 임신 중단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과거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으로 아들을 기대했던 이들이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불법 낙태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의료법에 1987년 태아 성별고지 금지 조항을 신설, 이를 어긴 의료인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지난 2008년 헌법불합치 판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현재 의료인들은 16주에 태아 성별을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알려주고 있다. 당시 판결 때 일부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낙태를 조장하고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11년만에 비슷한 우려가 다시 재기되는 셈.

최근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016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발표에 따르면 임신중지를 법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나라와 합법인 나라의 임신중단율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며 “임신중단율은 낙태죄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내실 있는 피임교육과 육아 복지정책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현재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등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이 대표의 개정안은 14주 이내의 경우 어떠한 사유든지 임산부의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고 14~22주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여성 22주 제한 없이 고민해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임신 주수가 여성의 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은주 활동가는 “여성이 임신을 인지하고 다양한 선택지에 대해 탐색하며 이를 숙고하고 결정하는 과정은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라며 “이를 도식적으로 구분하고 주수 간에 차등을 두는 것보다는 임신 22주 내에서 이러한 과정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걸 명시한 헌재 기준은 선언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연 이사도 “임산부 건강을 위해서라면 허용 주수를 22주로 단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예외적으로 임산부의 건강이 임신을 지속하기에 위험 한 경우에는 22주 이후라도 허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경우,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경우, 부부가 모두 소득활동을 해야해 어느 일방이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등이다.

김 이사는 “이들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1주일간의 낙태 숙려 제도를 도입해 일정 상담한 경우 수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들 중 상담을 통해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하기로 결정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범위와 방법을 법률로 구체화해 낙태를 줄이려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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