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룬다고 해도 어차피 현실과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며칠 전 경기도 의정부 어느 아파트에서 일가족 세 명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비교해 봐도 그렇다. 목공소를 운영하다 빚을 진 가장이 아내와 딸을 먼저 보낸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지난 어린이날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30대 젊은 부부가 어린 두 자녀를 꼭 껴안은 채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이다. 이들 부부가 지난달 직장을 그만두면서 경제적 상황이 악화됐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은 더이상 살아갈 희망을 놓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계속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 실직자와 파산자가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지금 상황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진단까지 제시된다. 당시 초래됐던 가정 해체 등 극심한 사회적 불행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기생충’이란 영화 타이틀이 그때의 기억을 압도적으로 상징한다.
물론 정치권이나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선다 해도 각 가정의 살림살이와 채무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에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생색내듯이 나눠주는 태도도 옳지는 않다.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무한정 걷을 수는 없으며,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다. 설사 눈앞에 어려운 상황이 닥쳐올지라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내일이 밝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이끄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과거 개발시대에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땀방울을 흘리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던 원동력이 바로 그러한 믿음에 있었다. 당장 허리띠를 졸라맬지언정 내일의 희망이 있다면 쉽사리 목숨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의정부 비극사건에서 혼자 살아남은 10대 아들의 얘기가 귓전을 때린다. “식구들이 전날 밤 둘러앉아 살아가는 고민을 나누던 중 서로 껴안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제 그는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 우리 사회가, 정부가, 정치권이 답변해야 할 질문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