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 Vs 경찰 구성원 사기…민갑룡 '진퇴양난'

경찰 공권력 범위 두고 경찰 조직 내 의견 분분
진상조사위, 과거 경찰 과잉진압 사과 촉구에
일선 경찰들 “공권력 어떻게 지키냐” 불만 표출
홍성환 경감 1인 시위…수뇌부도 고민 "논의 필요"
  • 등록 2018-09-21 오전 6:00:00

    수정 2018-09-21 오전 6:55:03

민갑룡 경찰청장(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과거 청산 없이 인권 경찰은 없다” “차후 폭력시위에 경찰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경찰 공권력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를 두고 경찰 조직 내 의견이 분분하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원회)가 과거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적하며 사과를 촉구하자 경찰 내부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2015년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에서 경찰이 입은 손해 배상 소송이 금전 배상 없이 마무리된 것을 두고 현직 경찰관이 1인 시위까지 나서면서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인권·민생 경찰로 발돋움하겠다’던 민갑룡호가 출범 두 달 만에 고민에 빠진 이유다.

◇잇따른 경찰 과잉진압 결론…“공권력 어떻게 지키나” 불만

진상조사위는 지난달 21일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같은 달 28일 쌍용차 사태, 이달 5일 용산 화재 참사까지 총 3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는 세 사건 모두 경찰의 과잉진압이 있었다고 결론 내리고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진상조사위는 특히 백남기 농민이 숨진 2015년 민중총궐기투쟁대회와 2009년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국가 손해배상청구소송 취하를 권고했다.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두고 경찰 내부에서는 우려를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한 일선서에 근무하는 경찰관은 “경찰의 과도한 무력 진압에 대한 반성이 왜 필요하지 않겠느냐”면서도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조장하고 정권의 편만 든 것으로 비칠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진상조사위의 입장을 반박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온라인 댓글공작을 지휘한 의혹으로 이달 12일 경찰에 출석한 조현오(63) 전 경찰청장은 ‘쌍용차 사태에 대한 법적 처벌 촉구에 대한 목소리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에 “당시 경찰 부상자가 143명이고 노조 부상자가 5명이었다”며 “그것이 어떻게 폭력 진압인가”라고 되물었다. 경찰의 과잉진압 이전에 폭력 시위 현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유남영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개월간 조사한 쌍용자동차 파업농성 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강제조정 수용’에 현직 경찰 1인 시위…응원 목소리도

이런 가운데 현직 경찰이 경찰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불씨를 키웠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용신지구대 소속 홍성환(29) 경감은 1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불법과 타협한 경찰청’ ‘조직원들 원성에 귀를 닫고 폭력 시위에 열려 있는 경찰 고위층’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홍 경감은 경찰 수뇌부가 세월호 집회 국가손해배상소송 강제조정안을 수용한 것을 비판하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 환경 조성을 촉구했다.

홍 경감은 “상호 간 기분 문제라면 화해로 소송을 종결할 수 있다”면서도 “해당 소송은 기동버스가 불타고 경찰관들이 피를 봐야 했던 불법시위와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을 위해 고독하지만 명예로운 조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직 경찰의 1인 시위를 두고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지만 경찰 내부에선 ‘할 말을 했다’는 응원이 많다.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홍 경감을 응원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젊은 동료가 용기를 내 1인 시위를 한다는 것에 고맙고 미안하다”고 적었다. 이 글에는 수 백개의 지지 댓글이 달렸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용신지구대 소속 홍성환 (29)경감이 1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불법과 타협한 경찰청’ ‘조직원들 원성에 귀를 닫고 폭력 시위에 열려 있는 경찰 고위층’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기 저하’ VS ‘과거청산 실패’…고민에 빠진 민갑룡

경찰 지휘부는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세월호 집회 국가손해배상소송 강제조정안 수용에 이어 진상조사위 권고까지 받아들인다면 조직 사기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 반면 진상조사위 권고를 거부하면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며 빈축을 살 수 있다. 진상조사위는 앞선 세 사건 외에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고(故) 염호석 삼성전자 노조원 장례식 개입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민갑룡 청장은 이달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진상조사위의 권고를 받고 한 차례 논의를 했다”면서도 “내부적으로 많은 의견이 있는 데다 현재 제기된 의견도 수렴해야 해서 몇 차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찰 수뇌부의 고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민 청장은 지난 7월 25일 취임사에서 ‘민주·인권 경찰’과 ‘자긍심 고취’를 키워드로 내세웠다. “보편적 시민 정신에 입각해 일하는 것이 민주·인권 경찰로 나아가는 길”이라며 “경찰이 법집행을 주저하거나 정당하게 법을 집행하고도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법적 기반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민 청장이 두 키워드 가운데 어느쪽에 방점을 찍을 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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