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태 "구조조정땐 산업전문가와 협업 필수"

경제적 불확실성 증대…과거방식 앞으론 안먹혀
구조조정 방향성 중요‥사업적 구조조정 필수
인센티브 통해 체질개선 유도‥금융기관 면책 부여
  • 등록 2018-12-05 오전 6:00:00

    수정 2018-12-05 오전 6:00:00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임승태 전 금융채권자조정위원장 인터뷰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불확실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지요. 앞으로 구조조정은 훨씬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속도보다는 방향이 훨씬 중요합니다.”

“미국이 금리올렸을 때 세계경제 요동쳤다”

4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의 사무실에 만난 임승태 전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 위원장(현 법무법인 화우 고문)은 구조조정 얘기를 꺼내자 대내외 경제환경이 무척 어렵다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리고 한숨부터 쉬었다. 임 전 위원장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을 거친 정통 재무·금융관료 출신이다. 국내 거시경제를 두루 살피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거친 뒤, 지난 3년간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위원회는 채권금융기관이 워크아웃 기업의 지원이나 퇴출을 결정하기 직전 이견을 조율하는 마지막 기구다. 그래서 위원장은 ‘구조조정 집도의나 조율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구조조정 베테랑도 우리가 맞닥뜨린 엄혹한 경제환경 앞에서는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임 전 위원장은 “미국이 계속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과거 국제 경제에서 큰 파동이 일었을 때는 모두 미국의 금리 인상기였다”며 운을 땠다. 실제 1994년 멕시코 위기, 1997~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모두 미국의 금리 인상이 빌미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불거진 것도 우리 경제의 부담이라는 것이다.

그는 “90일간 휴전을 했다고는 하나 미·중 무역분쟁이 단기간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중국이 부상하면서 가장 큰 수혜를 본 곳이 우리나라인데,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면 우리도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여전히 DJ 때 짠 산업구조‥위기 조기극복이 되레 ‘毒’

국내로 눈을 돌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더딘 산업구조 고도화 △저출산·고령화 △가계부채 △소득격차 △노동시장의 경직성 △물적 투자의 성숙화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마저 지연되면 우리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게 그의 걱정이다. 미리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결국 나중에 더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 산업의 주축은 정보통신(IT), 자동차, 철강, 조선·해운, 석유화학 다섯 개 분야”라며 “하나씩 따로 짚어보지 않아도 좋아 보이는 게 하나도 없다”고 평가했다.

임 전 위원장은 “우리 주축산업의 틀은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들어졌고, 가장 빛을 발했을 때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라며 “선진국이 리먼브러더스의 충격에서 휘청일 때 우리의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이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게 되레 독이 됐던 것 같다”며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정해 스스로 채찍질했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산업 고도화를 위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할 때 성과에 취해 도약의 기회를 놓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장친화적 구조조정 정착 안 돼…은행권은 ‘용인적 대출’ 과다

그는 구조조정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면서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기 어려워진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임 전 위원장은 “IMF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는 환자(한계기업)들이 스스로 수술대에 올라와 그나마 구조조정이 수월했는데 지금은 눈에 보이는 위기가 없으니 구조조정을 하기 더 어려운 시기가 됐다”고 했다. 위기가 조용히 다가오고 있으나 한계기업이나 채권단 모두 구조조정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시장에서는 구조조정 관행이 정착돼 있지 않고 제대로 된 원칙도 없어 선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임 전 위원장은 금융채권자조정위원회 위원장 때 경험을 예로 들며 “시장에 적정한 준거 가격(reference price)이 없어 거래가 안 된다”며 “막판까지 내몰려 공무원이 어쩔 수 없이 나서는 상황이 반복되는데, 그들(공무원)이라고 칼을 휘두르고 싶겠냐”고 되물었다.

특히 구조조정의 앞단에 서 있는 은행권의 소극적 태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용인적 대출’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지점장으로서는 돈줄을 끊으면 회사가 무너지고 결국 자신의 KPI(성과지표)가 떨어지게 돼 있다”며 “담보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자금지원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과거와 다른 구조조정…‘재무+산업 전문가’ 협업 중요

그는 앞으로의 구조조정은 IMF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은 “과거 위기는 재무적 부실만 털어내면 깔끔하게 정리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총수요 부족’이라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며 “때문에 구조조정의 방향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재무적 관점뿐 아니라 사업적 측면에서도 큰 그림을 봐야한다”며 “그러려면 해당 산업의 최고 전문가가 재무 전문가와 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전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조조정의 폭과 속도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풍(外風)에 쉽게 흔들릴 수 있어서다. 이런 원칙이 정해지면 재무 건전성과 성장성을 기준으로 불량기업은 단칼에 정리하되 살릴 기업은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구조조정 추진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임 전 위원장은 “의사결정을 할 때 책임과 권한이 분명해야 하는데, 애매하면 서로 발을 빼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된 자동차 부품산업에 대해 “현대차 노조가 지금까지 난리를 쳐도 자동차업계가 버틴 것은 1~2차 벤더시스템이 잘 갖춰졌다는 증거”라며 “우리 자동차 부품산업의 경쟁력은 꽤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옥석을 잘 가려 살릴 기업은 확실히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日 산업경쟁력 강화법 벤치마킹 필요‥구조조정 과정서 확실한 면책 보장

임 전 위원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본을 벤치마킹하면 도움이 될 것이란 뜻도 밝혔다. 우리와 경제구조가 비슷한 일본은 1990년 이후 장기침체를 겪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다.

그는 “일본은 경제가 주저앉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은행의 ‘용인적 대출’이 만연했고 동아시아 위기 이전에는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조차 없었을 정도였다”며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연구를 진행해 온 만큼 우리가 배울 게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와 더불어 일본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일본의 산업경쟁력 강화법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소개했다.

강화법은 창업기, 성장기, 성숙기 및 정체기 등 생애주기별 해당 기업에 다양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 산업이 신속하게 미래지향적 구조로 혁신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특히 1인당 종업원 생산성이 6% 증가한 기업이나 신상품 매출액 비중이 총매출의 1%를 넘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도록 하는 등 세밀하고 구체적인 지원기준까지 담겨 있다.

그는 “국내에서도 ‘원샷법’이라고 알려진 기업활력제고 특별법이 있는데 이 법을 확대개편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산업 구조개혁 툴을 만들면 (구조조정이나 혁신의) 모멘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당근을 줘 경제주체의 변화를 이끌면서도 금융 부문의 과감한 선제 대응도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원이나 공무원에게 과감한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게 관건이라고 역설했다.

임 전 위원장은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일어나려면 금융섹터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데,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며 “구조조정을 하는 금융당국이나 금융기관에 대해 면책을 확실히 보장해주고 성과를 냈을 때 보상이 따르는 구조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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