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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오전 7시 기상. 맞벌이 아내를 도와 출근 채비를 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켠다. 어제오늘의 주요 뉴스를 훑다가 틈날 때면 페이스북 친구 사연도 읽는다. 평소 운동과는 안 친하고 술자리는 챙기는 편. 모처럼 쉬는 날엔 영화를 몰아본다. 여느 40대 옆집 아저씨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사람 뭐지? 이름은 민복기(47). 1996년 극단 차이무(차원이동무대선)에 입단해 2002년부터는 대표직을 맡고 있다. 뭔가 독특하다. 가끔 생뚱맞기까지 하다. 행보를 종잡을 수 없어서다. 두서너 개의 작품(대본)을 한꺼번에 써내려 가는 식이다. 가끔 배우로 TV와 스크린, 연극 무대를 종횡무진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영화감독이 됐다가 어떤 때는 연출도 한다. 올 한 해 첫 출발 역시 심상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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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품이 유명한 사람, 잘 알려진 사람 이야기를 다루지 않나. 사실은 더 멋지게 살다간, 잊혀진 사람들이 더 많은데. 우연히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진원)의 노래를 들었는데 구구절절했다. 노래마다 단편영화처럼 사연이 있어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민 대표는 20주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꼭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늘 과정이 중요하니까. 예기치 않게 운명처럼 맞닥뜨리면 된다. 차이무 모토는 ‘즐겁고 재미있게’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관객이 보고 즐거우면 그만이고, 그다음이 의미라고 했다.
20년이 된 극단의 운영 노하우를 물었더니 “느슨한(?) 연대”라는 대답이 나왔다. 자율무대, 그게 차이무의 저력이란다. “마치 놀러 갔다가 고향 생각날 때 다시 오고. 마음 맞으면 또 무대에 서고. 내 애인이 딴 남자랑 놀아서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질투심을 너무 갖지 않는 것이 차이무에 이어진 힘이 아닐까 싶다. 굵직한 배우들을 배출한 것도 예술감독 이상우 선생의 혜안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문성근, 강신일, 송강호, 이성민, 박상원, 전혜진 등이 모두 차이무 출신이다. 덕분에 극단 차이무는 ‘대학로 스타 등용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무대는 늘 신선하다. 작품마다 차이무 특유의 색깔을 띠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생활언어로 ‘맛깔나게’ 전달하거나, 적절히 버무린 풍자와 해학은 관객을 사로잡는다. 대표작인 ‘늘근도둑 이야기’ ‘비언소’ ‘양덕원 이야기’를 비롯해 ‘슬픈연극’ ‘바람난 삼대’에 이르기까지 풍자 정신과 기발한 기법은 여전하다. 올 하반기에는 신작 2편을 올릴 예정이다. “오랜만에 이상우 선생의 신작과 내가 새로 쓴 작품을 보일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작업도 하고 불러주면 연기도 한다. 드라마 ‘미생’의 깜짝 출연은 내 생애 최고의 시청률 드라마가 됐다.”
민 대표에게도 꿈이 있다. 나이 들어 교외에 극장을 하나 짓고 함께 나이 든 동료들과 경로당(?) 극단을 운영하는 것. “이제 와 돌아보니 극단은 청년이 됐고, 극단의 주체들은 장년이 돼가고 있더라. 해를 거듭할수록 남다르다. 그래서 경로당 같은 극단을 만들고 싶다. 지금 내 주변 세대들이 소일삼아 놀러 와서 바둑두듯 공연을 올리고, 비슷한 양반들이 와서 공연도 보고. 예순 먹어 힙합뮤지컬을 올려보는 게 내 꿈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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