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소방관들 오래 기억해주길"…순직 예비소방관 故 문새미양

[2018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임용 2주 남겨놓고 현장실습 중 교통사고 참변
응급구조사 꿈 확고했던 딸…소방관 시험 한번에 합격
산재보험도 안 들어있던 예비소방관…법 개정 이끌어
"24년간 주기만 하고 간 딸…의로운 소방관들 오랫동안 기억되길"
  • 등록 2018-12-10 오전 6:00:00

    수정 2018-12-10 오전 6:00:00

故 문새미양 아버지 문태창씨가 지난 4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사진=송이라 기자)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이데일리는 올 한해동안 각박한 우리 사회에 따뜻한 울림을 전한 천사들을 소개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다가 목숨을 잃은 후에도 장기기증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나눠준 20살 청년부터, 불길 속에서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건 소방관과 시민들, 그리고 평생 모은 재산을 이웃을 위해 베푼 이들까지. 이들 모두는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할 사람들입니다.[편집자주]

“먼저 떠난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지만, 딸의 희생으로 수많은 예비 소방관들이 마음껏 구조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지난 3월30일. 천안 아산소방서 둔포119안전센터로 도로에 돌아다니는 유기견을 구조해달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4명의 소방관이 즉시 출동했다. 그 중 한 명이 소방관 임용을 2주 앞두고 현장 실습을 나온 교육생 고(故) 문새미양이다.

갓길에 소방차를 세워놓고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도로를 달리던 화물차가 정차한 소방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대로 추돌했다. 새미양을 포함한 소방관 3명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스물 네 살, 아직 채 꽃피워보지도 못한 나이였다.

“2주 후 정식 소방관이 되면 정복입고 가족사진부터 찍자고 들떠 있었는데…” 새미양의 아버지 문태창씨는 딸을 떠나보낸 뒤 지난 8개월이 아직도 꿈만 같다. 지금도 집에 들어서면 여느 때처럼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아빠’를 부르며 달려올 것만 같다.

사고 2주 후 딸의 동기 120여명이 정식 제복을 차려입고 소방관으로 임용되던 날, 문씨 부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새미양은 영결식 사진으로 쓰기 위해 소방당국에서 급하게 만든 합성사진 속에서 그토록 입고 싶어했던 정복을 입었다.

故 문새미양의 영결식 때 사용한 사진 (유족 제공)
학창시절부터 응급구조사 꿈…소방서 실습 후 소방관 결심

새미양은 고등학교 때부터 응급구조사가 되고 싶어했다. 문씨 부부는 말렸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문씨는 소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던 터라 딸이 좀 더 편안하게 인생을 살았으면 했다.

“차라리 간호사가 되라고 했어요. 그나마 덜 고생할 것 같아서요.”

그러나 새미양의 의지는 확고했다. 결국 선린대 응급구조학과를 수시로 진학했고 2학년 겨울 소방서에 실습을 다녀온 딸은 “소방관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시험을 준비한지 6개월. “워밍업 차원에서 출제 경향만 파악하고 오라”고 한 소방공무원시험에서 당당히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게 그 어떤 일보다 뿌듯하고 말하던 아이였어요. 이제와 생각해보니 처음에 좀 더 뜯어말릴걸, 차라리 대학에 떨어졌었더라면, 소방관 시험을 좀 더 늦게 붙었더라면, 이런 생각만 자꾸 드네요.”

문씨는 지난 4일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 내내 자주 말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했다. 문씨가 입은 파란색 작업복 소매는 눈물로 얼룩져 갔고 문씨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

故 문새미양 생전 모습 (사진=유족 제공)
살갑게 주변 챙기던 비타민 같던 딸

“항상 밝고 외향적이었던 새미는 우리 부부에게는 비타민 같은 존재였습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아내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죠. 24년간 저희 부부에게 많은 걸 주고 갔네요.”

새미양은 어린 나이에도 유달리 주변을 살갑게 챙기는 아이였다. 수능시험 후 첫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월급을 전부 털어 엄마, 아빠에게 지갑을 선물했다. 소방관 시험 합격 후 소방학교 입소 전에도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엄마와 단 둘이 대만여행에 다녀왔다.

소방학교에서도 새미양의 긍정 에너지는 이어졌다. ‘공동체 생활이니까 다같이 한마음으로 생각하기!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배려하기!’ 새미양이 매일같이 꼼꼼히 기록한 다이어리에는 이같은 말로 가득하다. 숙소에서 방장이었던 새미양은 그렇게 누군가를 챙기고 구하다 짧은 생을 마감했다.

故 문새미양이 소방학교 교육기간에 작성한 다이어리와 엄마에게 쓴 편지(사진=유족 제공)
“딸 희생 통해 예비 소방관 위험 제거…오랫동안 기억되길”

새미양의 희생은 많은 것을 남겼다. 소방 교육생은 공무원이 아니다. 통상 공무원은 공무원연금법 및 공무원재해보상법 가입을 통해 공무 중 위험을 보장하지만 교육 중인 공무원은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4대보험 가입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가장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예비 소방관은 4대보험은커녕 산업재해보험조차 가입돼 있지 않았다. 새미양의 죽음으로 아무도 관심없던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고 결국 신속한 법 개정을 통해 예비 소방관들의 안전장치가 한층 강화됐다.

“국민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소방관들이 더욱 안전한 환경에서 구조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우리 새미가 힘을 보탠 것 같아 하늘에서나마 뿌듯해 할 것 같아요.”

문씨의 마지막 바람은 딸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순직 공무원을 오직 유족들만 기억하고 있다는 건 외로운 일입니다. 매년 열리는 순직소방관 행사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내 아이를 비롯해 의로운 소방관들을 오랫동안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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