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혁신@미술]<3> 섞어라! 사랑받을지니

▲'이종교배'로 대중성 높인 기독교 미술
긴 머리 예수, 날개 달린 천사, 아기 안은 성모상 등
기독교 이미지들, 그리스·이집트 신화·미술서 빌려
BTS·'킹덤'도 이종교배 산물…자기화·세계화 '혁신'
  • 등록 2020-07-03 오전 4:10:03

    수정 2020-07-23 오후 9:22:33

카를 하인리히 호프만의 ‘겟세마네의 예수’(1886). 긴 머리에 수염이 난, 전형적인 예수의 이미지를 유화로 그렸다. 5세기경 동로마에서 보편화해 오늘날까지 친숙한 이 예수 이미지는 그리스신화 속 제우스로부터 긴 머리와 수염을, 아폴론으로부터 늘씬한 얼굴과 몸매를 가져와 합성한 것이다.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교회 소장.


미술은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밥으로만 채울 수 없는 풍요와 평화를 안겨줬으니까요. 그림의 힘이고 조각의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할이 이뿐이라 한다면 미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문명을 이끌고, 의식을 뒤집고, 결정적으로 돈의 흐름을 주도했던, 그것을 못 본 겁니다. 미술의 사조와 양식이 탄생할 때마다 세계경제에는 ‘변화의 그림’이 걸렸습니다. 바로 ‘혁신’을 주도했던 겁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미술로 이룬 혁신’의 현장입니다. 3D 컴퓨터그래픽에까지 이어지는 이집트 미술, 스페이스X 민간우주선의 근원인 그리스 미술, 대량생산의 개념을 만든 목판화, 메디치가문의 부가 만든 피렌체 미술, 부르주아를 탄생시킨 인상파 미술 등을 비롯해 구스타프 클림트,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등 ‘혁신의 아이콘’까지.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주헌 미술평론가] “지금껏 그 밴드(BTS)는 무라카미 하루키, 어슐러 르 귄, 오웰, 헤세 그리고 니체를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해왔다.”

영국의 ‘가디언’이 ‘BTS는 어떻게 세계 최대의 보이밴드가 됐나’라는 기사(2018. 10. 11)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BTS는 한국의 보이밴드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에는 동·서양의 문화가 다 녹아들어 있다. BTS뿐 아니라 K팝, 한류 전체가 ‘이종교배’의 산물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팝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기화한 뒤 이를 다시 국경을 뛰어넘는 문화상품으로 세계화했다. 한류의 성공 요인을 분석할 때 이 같은 이종교배의 노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수는 언제부터 긴 머리에 수염 난 모습이었나

미술사에서 이종교배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경우가 ‘기독교 미술’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매우 배타적인 종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럽의 미술관들을 찬찬히 돌아보면 기독교 미술이 그리 배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문화가 크게 번창하고 국경을 넘어 보편화할 때는 그 안에 매우 강력한 혼융의 요소가 있다. 이종교배 없이는 문화의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고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가기도, 수용하기도 어렵다.

도상의 측면에서 기독교 미술이 다른 종교의 미술과 ‘이종교배’한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예수 그리스도상과 성모자상, 천사상 등을 꼽을 수 있다. 다 우리에게 친숙한 기독교의 이미지들이다.

사람들에게 예수의 얼굴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긴 머리에 수염이 난 얼굴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용모는 정확히 고증된 게 아니다. 일단 ‘성경’에는 예수의 용모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다. 서기 2세기 말,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는 물고기나 닻 등 ‘픽토그램’ 형식으로 표현됐다. 그러다가 수염이 없는 젊은 철학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고, 4세기경에 신성을 나타내는 후광이 첨가됐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수염이 난 예수의 이미지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긴 머리에 수염이 난, 전형적인 예수의 이미지가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5세기경 동로마에서였다. 이때 이에 대한 저항이 없지 않았다. 전승에 따르면, 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겐나디오스는 긴 머리의 예수상을 그리다 손이 오그라든 화가를 치유해주면서 “짧은 고수머리의 예수상이 진짜”라고 시정해줬다고 한다.

이런 저항의식에도 불구하고 6세기에 이르면 긴 머리의 예수상이 동로마에서는 절대적인 표준으로 정착한다. 서유럽에서는 시간이 좀더 걸려 12세기 이후 긴 머리의 예수상이 표준이 됐다. 당시 고대 이스라엘의 젊은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긴 머리의 예수상이 표준이 돼버린 것일까. 이는 무엇보다 그리스신화의 제우스상과 아폴론상이 끼친 영향이 크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예수의 이미지는 제우스로부터 긴 머리와 수염을, 아폴론으로부터 늘씬한 얼굴과 몸매를 가져와 합성한 존재다. 제우스와 아폴론은 올림포스 종교의 최고신일 뿐 아니라 지중해 일대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던 신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자 만왕의 왕으로 전파하는 데 이 신들의 이미지만큼 지중해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는 이미지도 없었다. 화가들은 자연스레 이 이미지에 기대어 감화력이 있는 예수상을 만들어냈다. 크게 성공한 이 ‘전략’으로 인해 ‘제우스화’한 예수상은 가장 예수다운 예수상으로 인식됐고, 유럽인들의 마음에 기독교가 안착하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1513).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날개 달린 천사’들이 올려다보고 있다. 사랑스러운 이들 기독교의 이미지는 다른 종교의 이미지와 교배해 탄생한 ‘혼혈’들이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자상’은 이집트신화·미술, ‘날개 달린 천사’는 그리스신화·미술과 ‘이종교배’했다. 독일 드레스덴 츠빙거궁미술관 소장.


△아기 예수 안은 성모 마리아, 이집트신화·미술이 모티브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자상 또한 매우 사랑스러운 기독교의 이미지다. 이 이미지의 원형은 이집트의 ‘이시스와 호루스 모자상’(기원전 680∼640년)이다. 5세기, 성모 숭배를 배격한 네스토리우스파가 등장하자 교회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에 교회는 네스토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배척하면서 성모 공경의 관습을 더욱 고무했다. 이로 인해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성모의 위상을 강조한 이미지, 곧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이 활발히 보급됐다. 그 창작의 모티프가 바로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앙을 반영하는 ‘이시스와 호루스 모자상’이었다. 당시 지중해 일대에는 이시스 여신이 아들 호루스를 무릎에 앉힌 이미지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이 인기 있는 이교의 이미지를 활용함으로써 교회는 신도들이 자연스럽게 성모에 대한 친밀감과 경모심을 갖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한 쌍의 날개를 단 아름다운 천사상 역시 그리스신화의 신격인 니케와 에로스 등으로부터 그 이미지를 빌려 온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천사가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존재라는 설명은 없다. 로마 북쪽 교외 프리실라의 카타콤에 그려진 3세기 중엽의 천사상을 보면 날개가 아예 없다. 그러나 4세기 말이면 니케 등과 이종교배돼 날개가 달린 천사상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천사상은 예외 없이 날개 달린 존재로 그려졌다. 그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 신도들의 큰 사랑을 받고 고착화했기 때문이다.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1513) 부분. 기독교 미술에서 당연한 듯 여겨왔던, 천사상에 ‘날개’가 붙은 건 4세기 말. 그리스신화 속 니케·에로스 등과 ‘이종교배’한 이후다. 두 아기 천사는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틴 마돈나’(1513)의 하단에 등장한다. ‘시큰둥한’ 얼굴로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올려다보고 있다. 독일 드레스덴 츠빙거궁미술관 소장.


이처럼 대중적으로 친숙하고 인기 있는 기독교의 도상들은 다른 종교의 이미지와 교배해 탄생한 ‘혼혈’들이다. 만약 이 이미지들이 기독교 미술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기독교 미술이 지금처럼 국경과 종교의 경계를 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종교배야말로 대중화와 보편화를 가능하게 한 강력한 혁신의 힘이었던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결핍이 창조의 동력으로

이종교배를 통한 혁신의 사례는 우리 일상에서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퓨전사극, 퓨전요리, 퓨전국악 등 퓨전문화가 대표적인 것이다. 좀비와 조선시대가 만나 지구촌에 갓 신드롬을 일으킨 사극 ‘킹덤’, 태권도+댄스의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K타이거즈 등, 더 이상 퓨전을 언급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의 문화는 ‘퓨전화’하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서울 2020’ 편에 모두 31곳의 ‘스타 레스토랑’을 선정했는데, 눈여겨볼 특징이 ‘이노베이티브’로 불리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퓨전레스토랑’의 약진이다. 이처럼 근래 우리 문화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배면에는 다양한 이종교배의 시도들이 존재한다. 하이브리드와 컨버전스를 화두로 삼은 우리 산업계도 이종교배를 통한 혁신의 격렬한 실험장이 돼왔다.

이종교배는 자주 궁한 자의 해결책이다. 결핍을 메울 다른 방법이 없으니 남의 것을 갖다 쓰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창조의 동력이 된다. 아이스크림콘의 탄생은, 아이스크림 그릇이 떨어지자 옆 매점에서 팔던 웨이퍼를 사들여 이를 돌돌 말아 아이스크림을 얹어 판 아이스크림 장수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서 빅히트를 쳤던 이 혁신의 아이디어는 지금껏 소비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궁하면 교범대로 할 수 없다. 이종교배가 쉽게 일어나고, 그것이 혁신의 단초가 된다. 궁하면 통한다.

사실 특정 도상의 연원을 따지기 전에, 기독교는 애초에 유대교나 이슬람교처럼 이미지 제작 자체를 아예 금기시했다. 그러나 선교에서 예술의 힘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방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전례가 없으니 교인들은 개종 전의 문화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이교의 전통, 특히 그리스·로마의 전통이 기독교로 흘러들어왔다. 그 결과는? 기독교 미술이라는 엄청난 문화유산을 인류의 품에 안겨줬다는 것이다.

※ 기독교 미술과 만난 ‘신’

이시스: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집트신화에서 ‘죽음과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의 아내며 두 신의 아들 호로스의 어머니다. 이집트인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던 여신으로 전해진다. 그 숭배가 로마제국 전역을 넘어, 터키·서유럽 등지에서도 유적·유품이 발견될 정도다. 특히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수유하는 장면을 포착한 ‘이시스와 호루스 모자상’(기원전 680~640년·청동)은 기독교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성모자상의 원류가 됐다. 이시스는 오시리스가 죽은 뒤 다른 이에게 넘어갔던 왕권을 아들에게 계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근거로 이집트 왕권신화에서 이시스는 상징적인 어머니로, 무엇보다 그이의 무릎은 왕권을 보장해주는 옥좌로 표상됐다.

‘성모자상’의 원류가 된 ‘이시스와 호루스 모자상’(왼쪽). 기원전 680~640년 이집트에서 청동으로 만들었다(미국 볼티모어 월터스미술관 소장). ‘날개 달린 천사’ 이미지의 기원이라 할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승리의 여신 니케)는 기원전 기원전 331~ 323년 그리스에서 대리석으로 제작했다(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니케: 고대 그리스의 여신. 그리스신화에서 ‘승리의 여신’이다. 니케를 단독으로 전하는 에피소드는 거의 없는데, 다만 그리스신화의 ‘주신’ 제우스나 ‘전쟁의 여신’ 아테나 주변에서 전투·경쟁을 승리로 이끈 배후로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그리스인, 이후 로마인에까지 이어지는 전통으로 도기나 신전의 조형물, 주화 등에 니케의 모습을 많이 새겼다. 그중 압도적인 작품은 1863년 에게해 북서부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굴된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기원전 331~ 323년·대리석). 머리와 팔을 잃은 이 니케상은 대신 유려하게 조각된 날개를 가지고 있다. 바로 기독교 미술에서 ‘날개 달린 천사상’을 탄생시킨 배경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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