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대만은 ‘잊혀진 이웃’인가

  • 등록 2018-10-12 오전 6:00:00

    수정 2018-10-12 오전 6:00:00

최근 국제무대에서 대만 만큼이나 외교적인 압박을 받는 나라가 또 있을까. 지난 2년 사이 5개국이 연달아 외교관계를 포기하고 중국으로 노선을 바꿨다. 독립 성향을 내세우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취임 후에 벌어진 일이다. 아무리 소규모 나라라고 해도 저마다 유엔 가입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적인 지지 목소리가 절실한 대만으로서는 치명적인 손실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수교국이 17개국으로 축소된 상황에서도 대만을 고립시키려는 중국의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다음 차례는 바티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바티칸이 그동안 중국과 논란을 빚던 주교 임명권을 놓고 거의 타협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교황청의 마지막 결단도 시간문제라 여겨진다. 차이 총통이 그제 건국 107년을 기념하는 쌍십절(雙十節) 연설을 통해 “변화하는 국제 지형 속에서 지속가능한 존립을 성취하려면 국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도 이런 절박감이 느껴진다.

주목되는 것은 한국에 대한 대만 사회의 분위기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대신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주선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더구나 한때 전통 우방국 관계를 과시했던 사이다. 그런데도 국제적 협조에 대한 기대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 정부의 지원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1992년의 일방적인 국교 단절에서 비롯된 서운한 감정이 그대로 굳어져 버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임시정부 시절의 역사적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당시 후원자였던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국민당 정부에 대한 고마움보다 대륙에 남아 있는 사적(史蹟) 중심의 접근이 이뤄지는데 대해 섭섭하단 말 한마디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한국이 이미 중국 쪽으로 고개를 돌린 마당에 과거 인연에 집착한다는 게 스스로 구차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차이 총통이 이번 경축사에서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의 후원에 대해 두루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도 한국에 대해 일언반구 없었던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대만에서 한국을 좋아하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대만민의기금회(台灣民意基金會)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서 한국은 ‘가장 싫어하는 나라’ 4번째를 차지한다. 첫 번째인 북한에 이어 필리핀과 중국이 뒤를 잇고 있으며, 그 다음이 한국이다. ‘좋아하는 나라’ 순위에서도 싱가포르, 일본, 캐나다, EU, 미국 순서로 집계돼 한국은 다섯 손가락에서 밀려나 있다. 올해 양국 사이의 방문객이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될 만큼 관광교류가 부쩍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진정한 이해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현재 대만과 한국 양국의 집권세력이 진보성향을 앞세우고 있으며 과거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는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서로 외면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만에서 ‘전형정의(轉型正義)’라는 명분으로 한국에서처럼 적폐청산 작업이 이뤄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기인한다.

물론 추구하는 노선과 정책이 비슷하다고 해서 외교관계의 틀을 뛰어넘어 협력을 주고받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실익을 거둔다는 보장도 없이 자칫 정식 수교국인 중국과의 관계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의 양안(兩岸) 갈등이 통일이냐, 독립이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야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한마디씩 거들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 EU 국가들의 처신을 바라보면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한때 우리 후원자 역할을 했던 대만이 점차 멀어져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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