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공화국]"손님 잡으려니"…마스크 마저 사치인 사람들

매장홍보·노점·좌판근로자 "손님 끌려면 마스크 벗어야"
문 열고 영업 번화가 매장들…"안에서 일해도 마찬가지"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에도 지키지 않는 일부 고용주들
"장시간 야외근로 때 마스크 지급과 근무시간 단축 필요"
  • 등록 2019-01-21 오전 6:07:00

    수정 2019-01-21 오전 6:07:00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모두 ‘나쁨’ 수준을 보인 1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지난 14일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일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환경부의 대기질 측정 이래 최고치(경기 130㎍/㎥, 서울 129㎍/㎥)를 기록했다. 최악의 미세먼지 공습은 하루가 멀다하고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세먼지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람들이 있다. 길거리에서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노점상과 번화가 길거리 홍보에 나선 판매원 등 주로 바깥에서 말을 하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로, 이들은 마스크조차 낄 수 없는 상황이라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마스크 주지도 않고 업무상 착용도 힘들어”…문 열고 영업해 바깥과 큰 차이 없는 경우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대형 신발 판매점에서 일하는 김모(21)씨는 종종 매장 밖 거리로 나와 큰 팻말을 들고 매장을 홍보한다. 김씨뿐 아니라 매장 직원들은 입점 고객이 줄어들 때마다 돌아가면서 거리로 나와야 한다. 며칠 전처럼 미세먼지가 심한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껏 1년간 일해온 김씨는 한 번도 매장에서 따로 마스크를 받아본 적이 없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각자 마스크를 챙겨와 착용해야 한다. 미처 깜빡하거나 미세먼지 농도를 인지하지 못한 날엔 먼지를 그대로 마실 수밖에 없다. 실제 김씨는 며칠 간 미세먼지 탓에 목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 김씨는 “마스크를 낀 채 제품을 홍보하거나 설명하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되거나 건방져 보일 수 있다”면서 “마스크를 낀다고 해도 결국 불편에 중간에 벗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관광객들에게 마사지 가게 전단을 나눠주는 박모(38)씨도 “미세먼지가 너무 심한 날에는 나도 살아야 하니 마스크를 가지고 와서 착용한다”면서도 “그러나 현실적으로 다른 가게들과 경쟁하면서 홍보해야 하다 보니 마스크를 벗고 소리쳐야 전달이 더 잘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길거리 곳곳에서 노점·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 또한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기 위해 마스크를 벗어야 했다.

바깥이나 안이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명동과 홍대 등 유명한 거리의 가게들은 대부분 고객 유치를 위해 미세먼지 속에서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영업한다. 이런 경우 매장 안에서 일해도 미세먼지에 그대로 노출된다. 마포구 홍대 젊음의 거리의 한 화장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이모(23)씨는 “너무 추운 날에 문을 닫고 영업하는 것을 제외하면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대부분 문을 열고 영업한다”며 “점포 안에서는 그래도 실내라는 생각에 마스크를 따로 끼지 않게 될뿐더러 손님에게 제품 안내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배달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구로구 한 배달서비스업체에서 일하는 최모(39)씨는 “미세먼지 마스크는 개인적으로 알아서 사야 한다”며 “일부 업체에서 배달 건수당 몇백원 씩 할증을 해주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건강이 걱정되지만 매번 마스크를 사서 착용할 여건이 안돼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과 대부분의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보이고 있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누에다리에서 바라본 예술의전당 일대가 뿌옇다.(사진=뉴시스)


정부의 가이드라인 마련도 사실상 무용지물…“고위험 직업군 선별 등 맞춤형 대책 마련해야”

이처럼 곳곳에서 미세먼지를 마시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자 정부는 미세먼지 대응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일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 옥외 노동자들에게 마스크 지급·근무시간 단축·휴식시간 추가 제공 등의 내용을 담은 건강보호 지침서를 사업장에 배포했다. 장시간 바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서다.

하지만 각 사업장에 해당 지침이 배포된 이후 등장했던 최악의 미세먼지 속에서도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눈에 띄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사실상 무용지물인 만큼 고위험 직군 선별 등 맞춤형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장시간 미세먼지 노출은 건강에 위협이 되므로 노동자들의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며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을 위해 마스크를 지급하는 것은 최소한의 조치다. 근본적으로는 야외 노동 시간 자체를 줄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야외 노동자 중에서도 장시간 야외 근로가 일상인 교통경찰이나 톨게이트 근로자 등의 고위험 직업군을 선별해 별도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 정부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며 “관련 전문기관과도 협조해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잘 자리 잡도록 노력해 나갈 뿐 아니라 현장 지도 점검 등도 면밀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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