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대통령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 선언

  • 등록 2019-05-08 오전 5:00:00

    수정 2019-05-08 오전 8:21:53

[임규태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수석고문]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선언했다. 삼성이 2030년까지 비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자 대통령이 나서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반도체 산업을 살리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과연 정부가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 역할에는 궁금증이 인다.

시스템 반도체를 논하기 위해선 먼저 메모리 반도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를 처음 상용화한 회사가 시스템 반도체의 최강인 인텔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기 위해 메모리 사업을 일본에 넘긴다.

1980년대 초반 PC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중앙처리장치(CPU)와 운영체계(OS)를 장악하고 윈-텔(MS가 개발한 컴퓨터 OS인 윈도우와 인텔을 아울러 이르는 말) 카르텔을 구축한다. 인텔은 이후 부동의 반도체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인텔의 양보로 NEC와 도시바 등 일본 전자 기업들이 D램 시장을 석권한다. 하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미국의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맺은 합의)로 일본 엔화가치가 두 배로 뛰자, 후발주자인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을 제치고 D램 시장을 석권하게 된 것이다.

사실 삼성은 D램 시장을 석권한 1990년대부터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2000년대에 결실을 맺었다.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히트시키면서 부활에 시동을 건다. 잡스는 하드디스크 기반인 아이팟 후속으로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신제품을 준비한다.

삼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스에게 플래시 메모리 뿐 아니라 두뇌격인 AP도 번들로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이때부터 애플 제품에 삼성 AP가 탑재되기 시작했다. 초기 아이폰에도 당연히 삼성의 AP가 들어있었다.

그렇다면 왜 삼성은 지금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힘을 못 쓰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이유도 역시 애플 때문이다. 아이폰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던 2010년 애플이 자체 AP를 개발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결국 잡스의 선택은 옳았다. 하지만 삼성은 AP 시장을 상당부분 반납했고, 애플 AP를 위탁 생산하는 것으로 위로해야 했다. 만약 애플이 여전히 삼성의 AP를 쓰고 있다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판세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인텔과 애플이 반도체 역사를 바꿀 전략적 결정을 내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는 의미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뿐 아니라 파운드리(위탁생산) 비즈니스도 키우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는 상호 대립 관계다. 시스템 반도체 1위 인텔이 파운드리 비즈니스를 하지 않고,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가 독자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이유다.

5G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 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삼성의 반도체 전략은 인텔, 애플, 퀄컴 등 세계적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공생의 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문 대통령의 삼성전자 방문을 대법원 판결을 앞둔 이재용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닌가 의심한다. 웃기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그런 의심을 살 각오를 하고 삼성을 방문해야할 만큼 국민들이 느끼는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삼성전자 방문은 정부가 경제를 우선적으로 챙긴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더 이상의 숟가락 얹기는 안 된다. 기업의 전략은 기업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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