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61. 전시에는 장수를 바꾸지 말라

  • 등록 2018-12-13 오전 6:00:00

    수정 2018-12-13 오전 6:00:00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이나 조직의 최고경영자가 위기 시 물러나는 것으로 위기관리를 가늠하는 유행이 생겼다. 심지어 경영 퇴진이나 물러나겠다는 커뮤니케이션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글쎄다. 진짜 그런 퇴진 행위가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것일까?

물론 해당 최고경영자가 개인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때 퇴진이라는 행위가 위기를 관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개인의 문제가 조직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이 될 수 있다. 개인적 일탈을 일으킨 최고경영자가 나서서 ‘스스로 위기를 관리하겠다’ 천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외에 자신의 기업이나 조직과 관련된 각종 사건, 사고, 논란에 맞서 위기를 관리하는 경우 최고경영자의 ‘퇴진’은 대부분 적절한 위기관리책이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제대로 고치겠다는 것이 위기관리다. 책임이 있으면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위기관리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아 신속하게 하는 것이 위기관리다.

이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최고경영자가 그런 의사결정의 시기에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그 중요한 의사결정을 스스로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나아가서 후임에게 그런 중요한 의사결정을 미룬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위기관리 시점을 이번에는 그냥 흘려보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일반적 위기 시 최고경영자의 퇴진은 상당히 무책임한 행위다. 사내적으로 어떤 정치적 입장이 엇갈리는지는 외부 이해관계자는 모른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대신 당면한 위기를 해당 기업이 어떻게 해결하는 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와 중에 중요한 문제 해결자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를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바라볼지를 상상해 보자.

일부에서는 이사회 등에서 해당 위기 발생의 책임을 물어 최고경영자를 경질하는 것이 어떻게 위기관리라 볼 수 없는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런 경질이 진정한 위기관리가 되려면 현 최고경영자의 경질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최고경영자의 임명이 바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 경질에만 멈추어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사회나 오너측에서 최고경영자의 경질을 해야만 하겠다면, 그 이유는 위기 발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발생한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래야 이후 최고경영자들도 발생한 위기를 더욱더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위기관리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위기가 발생한 것을 부끄러워하기 보다, 발생한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라”

이사회나 오너가 꼭 기억해야 하는 원칙이다. 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최고경영자를 경질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평시에 많은 돌아봄과 개선이 생겨날까?

대부분이 그 반대다. 위기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는 그냥 옷 벗을 생각만 하게 된다. 사실상 자신의 운에 위기관리를 맡기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자리를 물러날 텐데, 제대로 된 위기관리 체계나 위기관리팀에 관심을 둘 필요도 아예 없어진다. 당연히 위기는 창궐하고 실패는 반복된다. 연이어 최고경영자들만 새롭게 반복 교체된 채 아무것도 개선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의 위기관리를 표방한 경질이나 퇴진이 바로 그와 관련된 예다. 국민은 왜 시설이 안전하지 않은지, 그리고 어떻게 안전을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데, 안전사고의 책임을 지고 있는 최고 관리책임자만 그냥 물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국민의 손가락질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린다. 개선은 없고, 새로운 자리만 생겨난다.

기업에서도 이런 악순환을 위기관리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옛말에 ‘전시에 장수를 바꾸지 말라’는 이야기를 왜 했을까를 생각해 보자. 전쟁의 목표는 최종적으로 이기는 것이다. 다 같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 내가 살고, 우리가 산다. 그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장수를 바꾸어 말에서 내리게 한다면, 그다음 어떤 장수가 제대로 목숨을 걸고 전쟁에서 싸워 승리하려 하겠는가?

물론 목숨을 걸 생각이 없는 장수는 빨리 바꾸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때에도 장수가 목숨을 걸고 싸울 생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내 외부로 커뮤니케이션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위기 시 싸워야 하는 최고경영자가 퇴진해 버리거나 경질을 당하면 해당 기업이나 조직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이는 해당 최고경영자가 제대로 된 위기관리를 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셈이다. 이건 전략적 커뮤니케이션도 아니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더더욱 아니다. 경계하자.

필자 정용민은 누구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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