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에 4500원짜리 냉면을 놓고 벌어진 일이라는 자체가 어이없다. 더구나 평양냉면의 본포라는 옥류관에서 일어난 사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9월의 일인데도 이처럼 뒷얘기가 늦게 전해진 데서도 현재 진행되는 남북대화의 폐쇄적인 단면을 돌아보게 된다. 북한에서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가”라는 대화가 일상적이라는 얘기가 없지 않지만 정상회담에 수행한 초면의 손님들에게 ‘목구멍’이라고 언급한 자체가 상식을 넘어선 처사다.
이미 남북 간 대화에 있어 서먹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촉매 역할을 했던 것이 또한 냉면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마주앉은 지난 4월의 판문점 정상회담 만찬 때는 냉면을 뽑기 위해 평양 옥류관에서 사용되는 제면기까지 동원된 바 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장안의 이름난 냉면집마다 손님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보여준 데서도 그 치솟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냉면이 한반도 평화의 전령사로 자리 잡았다”는 표현을 들을 만했다.
이처럼 몰상식한 경우가 너무도 자주 일어난다는 게 문제다. 리선권의 경우만 해도 공격성 발언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화의 남쪽 파트너인 조명균 통일부장관에 대해서는 물론 우리 기자들에게 강경한 어조와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기선 제압으로 몰아붙이며 주도권을 잡으려는 수법이라고 하지만 그때마다 용인하고 넘어간 우리 측에도 잘못이 없지 않다. 북측이 우리와 사전 협의도 없이 번번이 회담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변경했던 행태도 마찬가지다. 설사 개인적인 성격 탓이라고 해도 최상부의 묵인 없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모든 문제를 떠나 리선권의 막말에 면박 받은 총수들의 ‘냉면 트라우마’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 것인지 궁금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까지 눈치를 보는 장면이 공개됐다. 식사 자리에서 일어난 순식간의 촌극이므로 모멸감을 느낄 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냉면 그릇을 앞에 놓고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목멜 것이라는 정황만큼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래도 냉면의 잘못은 아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