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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뮤지컬 ‘엘리자벳’이 2012년 국내 초연한 후 ‘엘리자벳=옥주현’이란 공식이 생겼다. 그 이듬해 첫 앙코르를 올렸을 땐 ‘옥엘리’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세 번째는 달랐다. 지난달 13일 개막한 ‘엘리자벳’(9월 6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옥엘리와 더불어 ‘조엘리’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주인공은 배우 조정은(36). 옥주현과는 사뭇 다른 매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 세밀한 연기로 최적의 캐스팅이라는 찬사도 들린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디션도 고사했다. 연기폭이 넓고 노래도 너무 어렵다. 황후와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첫 시작을 돌아봤다. “그런데 문득 피해가지 말자. 한 단계 도약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과하지 않게 내 색깔을 녹여내려고 한 것을 잘 봐주신 것 같다. 여전히 무대에 서면 떨리지만 요즘 발이 무대에 붙는 느낌이다. 익숙한 옷을 입은 듯 편해졌다.” 한 달여 동안 조정은은 또 성장해 있었다.
△조엘리 별칭 얻다
귀국 후 뮤지컬 ‘피맛골 연가’(2010·2011)의 홍랑, ‘지킬 앤 하이드’(2010)의 엠마, ‘맨 오브 라만차’(2012)의 알돈자, ‘레 미제라블’(2012)의 판틴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홍랑 역은 2011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연기하는 게 재밌다고 느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유학에서 돌아와서도 ‘이게 내 길이 맞나’ 하는 고민이 끝난 건 아니었다. 다만 ‘맨 오브 라만차’를 하면서 배우마다 색깔과 결이 있는데 정작 내 정서와 색깔을 거부하고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드라큘라’(2014)를 하면서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로소 ‘연기가 재미있구나’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엘리자벳’은 조정은이 마음에 엉켜 있던 실타래를 풀고 방향을 튼 결정적 작품이다. “‘엘리자벳=옥주현’은 상징이다. 캐릭터 분석이나 설정 같은 건 안 했다. 그것을 바꾸려 들거나 넘어서겠다는 생각은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과 같다. 그보다는 얼마만큼 체화하고 소화하느냐에 노력했다. 누가 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러면서 옥주현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히려 연습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옥주현의 ‘엘리자벳’은 고독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버겁다, 외롭다, 절망적이란 정서는 알고 있지만 인생이 고독하다는 느낌은 내가 표현할 수 없는 정서 같았다. 무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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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3인과 케미…“색깔 너무 달라”
‘엘리자벳’은 유럽에서 가장 성대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벳의 일생을 그린다. 어린 시절부터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 아이를 잃은 후 노년의 황후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소화해야 한다. 그런 그녀를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죽음’ 역에 최동욱(세븐)·신성록·전동석이 나선다.
조정은은 요즘 관객에게 고마움을 부쩍 체감한다고 했다. “낮 공연을 하고 나오는데 옥주현 씨가 하는 저녁공연 주차장이 꽉 차 있더라. 그런데 내 공연은 왜 이렇게 비어 있나라는 생각보다 내 공연을 보러 찾아온 관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처음 느꼈다. 어떻게든 자리를 채워준 관객에게 만족감을 줘야겠다는 책임을 느낀다. 좋은 배우, 훌륭한 배우보다 무대 위 관객을 안심시키고, 믿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