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넘어 기억으로]노란리본·빈책상·낙서자국…`참사없는 미래를`

참사 흔적 남은 팽목항·세월호 선체가 있는 목포 신항
단원고 학생들 유품이 남아 있는 안산 4.16 기억교실
일반인 45명 안치된 인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시민 함께하는 광화문 전시관
  • 등록 2019-04-16 오전 6:10:00

    수정 2019-04-16 오전 7:13:48

지난 10일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는 수백개의 노란 리본과 관련한 그림 타일들이 남아 있다.(사진=김보겸 기자)


[사진·글=이데일리 최정훈 박기주 손의연 조해영 김보겸 기자] 김민수(29)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9만2039명 가운데 한 명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민수씨는 친구들과 같이 팽목항으로 내려가 주차 안내부터 청소까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작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팽목항에서 2014년 4월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후 5년이 지났다. 누구보다 이 문제에 열정적이었던 그도 일상에 쫓겨 참사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잊어갔다. 그리고 맞이한 세월호 5주기. 민수씨는 자신의 다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팽목항에서부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들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지난 10일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에 위치한 목포 신항에는 겉면이 녹이 슨 세월호 선체가 마련돼 있다. 선체 관람은 주말에만 가능하며 평일에는 입구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사진=김보겸 기자)


수천개의 노란 리본이 걸려 있는 팽목항·목포 신항

4월10일. 민수씨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5년 전 봉사활동으로 찾았던 팽목항이다. 오랜만에 찾은 팽목항은 그때와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후 수많은 사람이 다녀가면서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 조형물들과 노란 리본들이 이곳 풍경을 바꿔놓은 듯하다. 방파제 한 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리본, 그 아래엔 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듯 그림타일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엔 희생자들의 분향소였던 곳이 기억관으로 남아 있다. 기억관 내부에 붙어 있는 단원고 반별 단체사진 속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있다.

목포 신항에 도착한 민수씨는 항구 입구에 빼곡히 매달려 있는 수천 개 노란 리본을 발견했다. 신항에 위치한 세월호는 주말에는 직접 배 안쪽 참관이 가능하지만 평일에는 입구에서 배의 겉모습만 볼 수 있다.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우둑하니 서 있는 세월호는 출발할 때와는 달리 겉면이 대부분 녹슬어 있다. 평일이라 입구 앞에서만 지켜보던 민수씨 곁에서 나란히 보고 있던 한 할머니는 “저 배를 건지느라 다들 얼마나 애를 썼는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 11일 안산 단원구 고잔동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마련된 ‘4.16 기억교실’에는 희생자 학생들이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사진=손의연 기자)


단원고 학생들의 유품이 남아 있는 안산 4·16 기억교실

4월 11일. 민수씨는 안산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았다. 세월호 희생·실종자 304명 중 261명은 단원고 학생과 선생님이었다. 봉사활동 당시 학생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과 함께 슬픔을 나눴던 민수씨에겐 특별한 곳이다. 기억교실은 원래 단원고에 있었지만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옮겼다. 기억교실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직접 사용하던 유품 등이 남겨져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단원고 4·16기억교실 조성은 참사 당시부터 안산시민과 각계의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조직해 기록을 수집한 것에서 시작됐다.

민수씨가 별관 2층에 올라가자 실제 학교에 들어선 듯 교실과 복도를 따라 사물함이 늘어 서 있다. 교실 안 칠판에는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내용과 돌아오길 바라는 염원 등이 담긴 글이 가득했고 책상엔 노란 꽃 화분과 함께 학생들이 생전에 남긴 낙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간호사·대기업 직원·세무사 등 교실 뒤편 게시판 `나의 꿈! 나의 목표!`에 적힌 내용은 평범했던 학생들의 모습을 생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11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는 한 희생자의 유품인 자전거 유니폼과 공기 펌프 등이 놓여 있다.(사진=박기주 기자)


잠수사 등 안치된 인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4월 12일. 민수씨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이곳엔 희생자 중 일반인 희생자 43명과 세월호 선체 수색 중 숨진 잠수사 2명이 안치돼 있다.

민수씨가 봄꽃이 가득 핀 공원 안쪽으로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타일로 이뤄진 노란리본이 크게 장식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복원된 세월호 모형과 함께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자전거 유니폼, 회사의 사원증, 구형 휴대전화 같은 희생자들의 유품은 이들이 다양한 각자의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하루에 80명에서 200명 정도 다녀간다는 추모관에는 이날 따라 자녀의 손을 잡고 찾아온 방문객들이 유독 눈에 띈다. 한 어머니는 10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에게 “5년 전에 큰 사고가 있었고 그때 돌아가신 분들 중 일부가 여기에 계시다”며 “다시는 그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천막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마련되었다.(사진=조해영 기자)


‘진상규명 요구’ 유가족 설치 천막이 있던 광화문 전시관

4월13일. 민수씨는 2014년에 팽목항에서 같이 자원봉사를 했던 친구들과 광화문을 찾았다. 광화문은 2014년 7월부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참사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설치한 천막이 최근까지 있던 장소다. 지난달 18일 희생자 가족들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추진하는 서울시와의 합의에 따라 천막을 자진 철거했다. 지금 그 자리엔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들어섰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단원고 학생들의 단체사진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 옆에 희생자 학생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이 그리고 희생 학생 부모들이 쓴 시 `그립고 그립고 그리운`이 걸려 있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자 참사 당시 진도 앞바다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광화문 단식 농성장이 담긴 사진, 기록들을 열람할 수 있는 태블릿PC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세월호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듯 1970년 남영호 참사,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대한 기록도 함께 전시돼 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세월호에 대한 기록들은 참사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며 미래에도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라고 말해준다.

옆에서 같이 전시공간을 둘러보던 민수씨의 친구는 “천막으로 남아 있을 땐 슬픈 감정이 컸는데 이렇게 전시공간으로 남으니 보다 담담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그 말을 듣자 “감정으로 남는 것보다 기억으로 남는 것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일인 것 같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큰 사고가 일어나면 이제는 나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기억·안전 전시공간’에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사진=조해영 기자)


*이 기사는 세월호 추모 및 기억 공간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이 과정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당시 자원봉사자, 방문객, 직원 등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가상의 인물인 김민수씨가 탐방하는 형식으로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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