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불평등한 가족 호칭을 개선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시댁’과 ‘처가’, ‘도련님’과 ‘아가씨’, ‘처남’과 ‘처제’ 등 남편 쪽 집안은 높여서, 아내 쪽은 낮춰 부르는 잘못된 관습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여가부가 추진하겠다는 가족 내 호칭 개선을 두고 남여 간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부분 여성들은 잘못된 호칭을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고 환영하는 반면 남성들은 수백년간 써온 호칭을 정부가 나선다고 바꿀 수 있겠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평생을 그렇게 불러왔고, 그렇게 불린 사람들이 나라가 나선다 한들 오늘부터 바꾸자며 시댁을 시가로, 외할머니를 할머니로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은 흔히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호칭이 불평등하다면, 관계 역시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의식적으로라도 바꿔나가는 게 맞다.
기업들도 호칭을 바꾸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구성원들은 어색해했고, 호칭이 바뀐다고 문화가 바뀌겠느냐는 불만도 많았다. 그러나 호칭이 바뀌자 기업문화를 바뀌었고, 바뀐 기업문화 덕에 성과를 낸 사례가 많다.
카카오만 해도 창업 때부터 모든 구성원이 서로 영어이름을 부르며 수평적 조직문화를 정착했고, 이것이 지금의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한 다양한 사업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됐다.
언어는 고인 물이 아니다.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뀐다. 불과 3~4년 전에는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신조어가 어느새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과거엔 잘못된 표현이었던 단어가 표준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쁘다’와 ‘찰지다’ 같은 단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못된 표기였지만 이제 표준어가 됐다. 짜장면이 표준말이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호칭 개선만으로 가족 내 불평등한 문제들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호칭을 바꾸는 일이 첫걸음이 될 수는 있다. ‘수십년을 그렇게 살아온 어른들을 어떻게 설득하려 하느냐’, ‘그깟 호칭에 뭐 그리 예민하게 구느냐’며 타박할 게 아니다.
시댁을 시가로 부르는 게 당연한 일이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 호칭 개선을 일부 여성들의 불평쯤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는 흐름으로 받아들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