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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예술대학을 졸업한 이모(28)씨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남일 같지 않다. 이씨는 “대학시절 교수의 성추행·성희롱 행각을 숱하게 목격했다. 하지만 유명대학도, 유명인이 저지른 일도 아니어서 어차피 조용히 묻힐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피해자는 물론 목격한 사람들도 입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잘못 했다간 가해자에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피해자는 색출만 당하고 취업 등에 불이익이 있을까봐 다들 폭로를 꺼리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당했는데” 소리 없이 묻히는 미투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는 가운데 일반인들도 잇따라 미투 운동에 가세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 미투 글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장된 채 폭로한 피해자만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투운동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일반인 미투도 조치하고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유명 대학·회사에서 폭로가 나오거나 피해 사실이 심각할 때의 미투 제보는 빠른시일 내에 기사화되거나 공론화 되는 것에 반해 대개의 미투 제보는 큰 화제가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에서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소리 없이 묻힌 채 2차 피해만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미투’를 외치길 주저한다.
스타트업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29)씨는 “스타트업의 경우 업계가 좁아서 피해사실을 밝힐 경우 금방 피해자 신상이 탄로난다”면서 “최근 미투 운동이 일면서 용기를 가지고 고백하려는 주변인들도 많지만 ‘내 사건 따위 누가 신경이나 써줄까’하는 마음에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반 회사에 근무 중인 이모(33)씨도 “예전 상사는 내가 임신한 걸 알고도 ‘만나고 싶다’는 등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았지만 생계문제가 있어 차마 폭로할 수가 없다”면서 “유명인들은 유명해서 이름이라도 거론되지만 일반 직장인들은 꾹 참을 수밖에 없다. 성희롱도 유명한 사람에게 당해야 하나 보다”고 한숨을 쉬었다.
“미투엔 형식없어, 시민단체 등에 도움 요청해야”
전문가들은 자신이 당한 성폭력 등 피해를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최근 이슈가 되는 미투 제보가 모두 방송을 통한 것들이다 보니 피해자들이 ‘유명한 사람한테 심각한 피해를 당했을 때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우려 된다”며 “미투에 고정의 포맷이란 없고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회복해 나갈 수 있다. 여성단체와 함께 의논해 보고 향후 어떻게 할지 결정해도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