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고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토큰 이코노미를 접목시킨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생태계와 그 생태계가 작동하게 만드는 토큰 이코노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길잡이가 절실합니다. 이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 프로젝트인 레밋(RemiIt)을 이끌고 있는 정재웅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수석 토큰 이코노미스트가 들려주는 칼럼 ‘블(록체인)토(큰)경(제)’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정재웅 레밋 CFO] 암호화폐시장은 복잡하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포함해 1600종이 넘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토큰이 현재 거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거래되는 시장도 여러 국가인데다 한 국가 내에서도 여러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들 거래소 역시 암호화폐로만 매매가 가능한 거래소가 있는가 하면 법정화폐로 거래가 가능한 거래소도 있다. 이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암호화폐시장의 현재 모습은 통화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금융자산으로서 기능하고자 하는 혹은 자체 생태계에서 지급결제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시장으로서 적합하지 못하다.
바람직한 시장이 무엇인지 먼저 간단하게 이론적으로 생각해보자. 수요와 공급이 양 측면 모두에서 풍부하게 존재해 그 어느 쪽의 참여자도 단독으로 가격을 결정하면 안된다. 즉 수요자와 공급자는 모두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 수용자여야 한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가격 수용자라는 것은 이 시장이 독과점이 없는 경쟁시장임을 의미한다. 시장에서의 거래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시장 참여자들은 정보를 자유롭게 취득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투명한 거래 과정과 이에 관련한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한 규칙이 있어야 하고 정부는 이러한 규칙의 집행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물론 시장실패가 일어날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 있지만 그러한 개입은 최소한으로 유지돼야 한다. 정부의 빈번한 개입은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를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투명하지 못해 정보 비대칭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리는 그 모습을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의 1970년 논문인 `레몬 시장(Market for Lemons)`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애컬로프는 중고차시장을 예로 들면서 투명하지 못하고 정보가 비대칭인 시장 문제를 설명한다. 시장에 상태가 상, 중, 하인 세 대의 중고차가 존재하고 각 차량의 가격은 300달러, 200달러, 100달러다. 중고차 수요자는 차량의 상태는 알 수 없고 가격만 알 수 있는 반면 중고차 딜러는 차량의 상태도 알고 있다. 즉 이 시장은 정보 비대칭시장이다. 중고차 수요자가 가격만 정보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세 중고차의 평균 가격은 200달러가 된다. 그렇다면 수요자는 평균 가격보다 비싼, 상태가 제일 좋은 300달러 차량을 선택지에서 제외한다. 그 경우 시장의 평균 가격은 150달러가 되고 역시 200달러 차량이 제외된다. 결과적으로 정보가 비대칭한 시장에서 정보를 적게 가진 시장 참여자는 가장 나쁜 재화 혹은 서비스를 선택하게 되고(역선택, Adverse Selection), 그 결과 이 시장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붕괴된다.
암호화폐시장 역시 정보 비대칭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일단 투자자에 대한 KYC 절차를 거친 이후에는 지갑 주소로만 거래자를 판별하기에 부당 내부자 거래 같은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적발이 쉽지 않다. 이에 더해 암호화폐시장은 공시제도 같은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규제도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투자자들 역시 자신이 투자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백서나 이러한 백서를 리뷰하는 소수의 영향력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언스트앤영(EY)이 지난 10월21일 발행한 ICO 실태보고서에서 언급한, 2017년 한 해 동안 IC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프로젝트의 84%가 여전히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암호화폐시장의 문제를 적확하게 보여준다.
분명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이미 한 차례 버블이 지나가 답보 상태에 있는 암호화폐 업계에 있어서 이는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암호화폐와 그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보 비대칭의 해결과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 방법만이 제대로 된 프로젝트에게 자금을 공급하고 투자자를 유인해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