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의 진화]③판교밸리의 하루..."판교만의 문화가 최고죠"

판교밸리만의 이색 문화
전세 버스 대절, 이사 후 자출(자전거출근)족
중고거래도 회사욕도 SNS로
  • 등록 2016-01-26 오전 7:00:00

    수정 2016-01-26 오전 7:00:00

[글·사진 이데일리 유근일 기자] 지난해 넥슨에 입사한 이수연(30·가명)씨는 입사 직후 서울 강북 지역에서 잠실로 신혼집을 옮겼다. 그럼에도 대중교통으로 매일 아침 잠실과 판교를 오가기는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출근 시간도 크게 줄지 않았다.

출근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인트라넷(사내 전산망)에 올라온 글에서 해법을 찾았다. 서울 삼성·잠실 인근에 사는 직원들끼리 통근 버스를 빌리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지금은 매달 6만원을 내고 마음 편하게 버스 안에서 20분간 핸드폰 게임을 즐기며 출근하고 있다.

25일 판교 직장인들이 신분당선 판교역을 나와 회사로 출근하고 있는 모습. 판교역에서 판교테크노밸리까지는 도보로 10분여가 소요된다.
NHN엔터테인먼트(181710)에서 근무하는 한해승(38·가명)씨는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최근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탓에 잠시 버스를 이용하고는 있지만 자전거는 2010년부터 그의 주된 통근 수단이다. 그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은 과거 NHN 재직 당시 사당과 분당을 오가던 회사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된 2010년 무렵부터다. 셔틀버스 운행이 종료돼 출·퇴근을 걱정하던 그는 고민 끝에 분당 샛별마을로 이사했다. NHN의 게임사업 부문이 분할돼 NHN엔터테인먼트가 사옥을 판교로 옮긴 뒤에도 그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회사와 집을 오간다.

출근길 직장인을 회사에 내려주고 회차 중인 SK(034730)플레닛의 셔틀버스. 판교 지역에는 서울 사당 또는 강남 지역에 소형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회사들이 많이 있다.
판교테크노밸리(이하 판교밸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판교 적응기’다. 판교에 위치한 회사 근무자들은 야근이 잦은 IT(정보기술) 업종의 특성 때문에 퇴근길 ‘러시아워’는 다른 직장인들 이야기다. 잔업이 없더라도 러시아워가 지날 때까지 회사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출·퇴근 걱정을 해결한 직장인들은 판교만의 독특한 문화와 마주한다.

판교밸리에선 출·퇴근이 불규칙하고 첨단 기기 유행에 민감한 IT 업계 관계자들이 몰려 있는 만큼 정장 차림의 직장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장 대신 편안한 후드 점퍼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 쓴 직장인들로 출·퇴근길과 점심 시간이 가득 찬다. 신제품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보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도 많다. 아마존, 이베이 등 해외직구 사이트를 통해 국내 출시 이전에 구한 제품을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는 모습은 판교에선 흔히 볼 수 있다.

25일 셔틀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출근하는 넥슨 직원들의 모습. 출근 시간인 9시 무렵부터 판교역과 넥슨 사이에는 출근하는 직원들을 위한 셔틀버스가 수차례 오간다.
같은 업종 종사자들 간의 교류가 활발한 것도 특징이다.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라인드는 판교 직장인들의 주요 정보 수집 경로 중 하나다. 블라인드는 회사의 이메일 주소로 가입 인증을 해 익명으로 같은 업종의 종사자들끼리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앱이다. 이 게시판에는 “저녁 10시가 지나 서울가는 택시를 잡으려면 A 회사 앞으로 가면 쉽게 잡을 수 있다”, “‘판교의 등대’ B회사는 오늘도 어김없이 불을 밝히고 있네요”와 같은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다른 회사의 연봉 수준을 알아보는 일도 새로운 게임 프로젝트를 위해 사람을 찾는 일도 활발히 이뤄진다.

이수연씨는 “회사는 달라도 같은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끼리는 SNS 등을 통해 각자 회사 사정을 빤하게 꿰뚫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근무 중 산책을 하듯 나와 바로 옆 건물에서 이직 면접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 자기 일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25일 판교테크노밸리 중심에 위치한 금토천교를 건너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 금토천교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넥슨, NHN엔터테인먼트 등이 동쪽에는 H스퀘어를 비롯한 안랩, 쏠리드 등의 회사가 있다.
판교만의 독특한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판교장터’라는 모바일 중고거래 앱도 있다. 지금은 당근마켓이란 이름으로 바뀐 이 앱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를 통해 판교 근무 여부를 확인해 가입을 승인한다. 당근마켓 앱 개발사 N42의 김재현 대표는 “같은 업종, 가까운 지역에서 중고 거래를 하다보니 카카오(035720)와 NHN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중고 거래를 하다 서로 친해지는 사례도 있다”며 “같은 IT업종 종사자들 간의 중고 거래인 만큼 제품도 믿을 수 있고 택배를 보낼 필요 없이 직접 만나 거래를 할 수 있어 이용자들의 관심이 높았다”고 말했다. 이용자 수도 3~4개월만에 1만2000명까지 늘었다.

이런 판교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소규모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판교 지역의 직장인 12명은 ‘아이러브판교’라는 웹진을 창간했다. IT업체 디자이너부터 판교 지역 경찰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최영진 에디터는 “4년 전 회사 때문에 판교로 처음 넘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는 동안 판교의 모습이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IT 단지로 시작했지만 공방이나 특색 있는 가게도 늘어나는 등 판교 만의 독특한 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고 전했다.
판교 지역 직장인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중고거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 캡처 사진. 노트북 뿐 아니라 가구와 화장대 등 다양한 중고제품들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사진=N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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