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박물관]①오뚜기 함태호의 고집 "한국인에게 수입산 못 먹인다"

일제강점기 한국에 들어온 카레
수입 의존에 故 함 회장 '국산화' 앞장
엄격한 품질 관리...연매출 2조 육박
외국계 회사 공세에도 안방 사수
  • 등록 2017-10-26 오전 6:00:01

    수정 2017-10-26 오전 7:44:52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미국의 언론인 콜린 데일러 센이 2011년 저술한 ‘커리의 지구사’는 한국에서 ‘카레’라고 불리는 커리(curry)가 인도를 벗어나 세계인의 음식이 되기까지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한국의 카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커리는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가정식이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시판용 커리가루를 사용해 일본식 커리를 만들어 먹는다.”

인도 커리에서 유래, 영국과 일본 거쳐

카레는 인도와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에서 먹던 전통 음식이다. 멀리 남부 아시아 대륙에서 즐겨 먹던 커리가 카레로 이름이 바뀌어 한국에 들어온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일본과 영국을 거쳐야 한다. 카레는 강황을 주재료로 커리 잎, 호로파, 고추, 후추 등 여러 향신료로 구성한 커리 가루와 소스가 들어간 스튜를 비롯해 볶음밥과 튀김 등을 통칭한다. 특히 남부 인도에서는 고기와 채소를 강황 등과 함께 기름에 볶은 요리를 즐겨 먹었다.

이를 현지에서는 카릴(karil) 혹은 카리(kari)라 불렀고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인도를 식민지배 하던 영국인들이 이것을 커리(curry)라 부르면서 카레가 유래했다. 인도에서 벗어나 영국으로 건너간 카레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희귀한 스튜’라는 이미지로 영국인들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특히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자국의 해군의 보급식량으로 카레를 선택한다. 세계 각지를 누비던 영국 함대가 도착한 곳 중에 한 곳이 바로 일본이었다.

19세기 중반 혼슈 가나가와현의 요코스카항에 정박한 영국 함대의 해군들이 커리를 먹는 것을 본 일본 해군 장성들은 커리를 영국군의 체력 비결로 보았다. 결국 일본 해군도 영국 해군처럼 커리를 보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커리는 카레로 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 조선에서도 20세기 초반 일본의 영향으로 카레가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한국에서 만든다

오뚜기 홈페이지 내 회사 연혁에 게재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주요 자료 사진. 단체사진을 찍는 직원들의 모습과 안양 공장 건설 및 함태호 회장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구성했다.
한국에서 카레가 강황을 주재료로 하는 노란 향신료 가루에 감자와 당근, 양파 등의채소와 소고기와 닭고기를 볶아 끓인 물에 넣어 걸쭉하게 죽처럼 만든 요리로 굳어진 데에는 배경에는 오뚜기의 ‘오뚜기 카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함태호(1930~2016) 오뚜기 초대 회장은 1969년 오뚜기의 모태인 풍림상사를 창업하며 1호 제품으로 분말형태의 ‘오뚜기 즉석카레’를 선보였다. 개성상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진 함 회장은 비평준화 시절 한국의 명문고로 꼽힌 경기고를 나와 홍익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함 회장은 친형인 함승호 조흥화학공업 창업주가 기초화학물과 식품첨가물 제조에 뛰어든 것을 보고 서구 조미식품을 비롯해 소스의 한국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던 함 회장은 회사를 차리면서 ‘카레’를 국산화 하기로 결심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을 통해 들어왔던 카레는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았던 외국 음식이었다. 20세기 초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카레를 가져왔고 이른바 해외 최신 메뉴로 퍼지기 시작한다. 1930년대 국내 일간지에서는 카레에 대한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935년 5월 동아일보는 “우리 조선에서도 시골궁촌이 아니면 어지간이 보급되였다”고 카레를 소개했다. 1937년 12월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흔히 너절한 식당 가튼 데를 가면 주문한 지 오분도 안되어서 내어놋는 라이스카레가 잇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카레에 대한 맛 표현은 비슷했다. 인도음식이라고 카레를 소개하면서 “이것은 먹고 잇슬 때는 입안이 확근확근하고 몸에 털이 오르는 것 가트며 더옵기도하다‘고 평했다.

함 회장이 식품회사를 차리면서 첫 제품으로 카레를 내놓은 배경에는 카레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식품으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영국 해군을 통해 커리를 도입한 일본은 이후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며 강황 가루와 밀가루 등을 배합해 인도식 커리와는 다른 카레를 만든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도 일본의 카레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였지만 정작 카레 가루는 국내에서 대규모로 제조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했다.

수입산 밀어내고 반세기 ‘부동의 1위’

출시 초반 ‘오뚜기 카레’는 수입산에 밀려 낮은 인지도로 매출이 좋지 않았다. 이미 일본의 ‘S&B’와 ‘하우스인도카레’ 등 수입산 제품이 굳건하던 시장에서 ‘오뚜기 카레’는 설자리가 좁았다. 게다가 1970년 초 정부가 카레에서 카레 속 불연성의 광물질인 ‘회분(ash)’이 제한 수치(7%)를 초과한 14.6%로 과다 검출됐다고 발표하며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품질에 있어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함 회장은 신문광고 등을 통해 이를 반박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다.

먼저 1973년 사명을 오뚜기 식품공업주식회사로 바꾼 이후 ‘오뚜기 카레’ 홍보를 강화한다. 또한 평일 오후 5시와 6시 어린이 방송 시간대와 가족들이 함께 TV를 보는 일요일에 TV광고를 집중했다. 이때 나온 것이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라는 CM송이었다. 여기에 회사 영업용 차량에 오뚜기의 심벌마크를 부착하고 오뚜기에서 나오는 다른 제품의 포장박스에도 ‘오뚜기 카레’ 문구를 써넣었다.

이 외에도 기존 도매상 위주의 유통 거래에서 제품을 직접 점포에 납품하는 루트 세일(Route Sale)을 식품회사 최초로 펼쳤다. 오뚜기 직원이 직접 점포에 ‘오뚜기 카레’를 배송하고 진열과 함께 판촉행사까지 같이하면서 ‘오뚜기 카레’의 인지도를 높여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오뚜기 카레’는 수입산 제품을 밀어내고 한국에서 카레의 대명사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엄격한 품질관리 안방 시장을 사수하다

올해로 출시 48주년을 지난 ‘오뚜기 카레’는 국내 분말 카레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다른 식품회사들은 틈새시장을 노릴 뿐 분말 카레 시장 진출 자체를 꺼려할 정도다. 오뚜기가 연매출 2조원에 가까운 식품회사로 성장하는 밑바탕에는 ‘오뚜기 카레’의 굳건한 품질이 밑바탕이 됐다.

오뚜기는 카레의 주제료인 강황을 비롯한 향신료를 직접 직원들이 현지에 가서 육안으로 확인 한 뒤 수입하고 국내 공장에서 분쇄한다. 또한 국제공인시험기관 KOLAS의 인정기관인 오뚜기 식품안전센터는 국내 식약처 기준 외에도 미국의 FDA, EU의 RASFF, 일본 후생성 등 세계 각국의 식품안전기관과 소비자단체들이 내세우는 기준 및 정보까지 수집해 제품에 적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 외에도 국내 최고 수준의 유화기, 균질화기, 레토르트 살균기 등의 설비와 각종 분석기기들을 갖춘 중앙연구소를 운영하며 품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품질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은 오뚜기가 카레 외에도 케찹과 마요네즈, 후추 등 30여가지 품목에서 외국계 회사의 공세 속에서도 안방 시장을 내주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함 회장은 2011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식품산업 발전과 사회 공헌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함 회장은 평소 자신의 식품철학에 대해 “보다 좋은 품질, 보다 높은 영양, 보다 앞선 식품으로 국민식생활 향상에 이바지 한다”고 밝혀왔다. 이러한 함 회장의 유지는 오뚜기가 최근 국민들로부터 소위 ‘갓뚜기’라 불리며 찬사를 받는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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