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사석에서 만난 A저축은행 대표는 정부가 저축은행에 서민금융의 전초기지 역할을 주문하고 있으나 현실은 정반대라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1972년 상호신용금고법이 제정된 지 46년째다. 시대도 상황도 바뀌었는데 ‘소규모·소지역 민간금융기관 육성’이라는 낡은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저축은행 종사자의 기를 꺾어놓는 규제를 추가하기만 할 뿐 사라진 규제는 전혀 없다시피 하다”고 꼬집었다.
저축은행 성장판 잘라놓은 낡아빠진 영업구역 제한
저축은행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되 반대급부로 중금리 대출 활성에 매진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식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복수의 저축은행 대표들은 “옥죄기만 고집해서는 저축은행들이 규제를 회피할 궁리만 하게 된다”며 “이중삼중 중첩된 규제에 적응하느라 정작 본업인 서민금융 활성화에는 애를 먹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저축은행들이 완화를 요구한 △M&A 제한 △영업권역 제한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 비율 △비상장사 투자 제한 등은 해묵은 규제들이다. B저축은행 대표는 “비대면 채널을 통해 시중은행들과 경쟁하는 현실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저축은행들이 79개나 되는 만큼 규모에 따라 계단식 규제를 적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업구역 제한이 공정경쟁을 저해해 지역 금융소비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저축은행은 물론 정부 내에도 있었다. 가깝게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저축은행은 원칙적으로 지점설치가 금지돼 있고 예외적으로 영업구역 내·외에 지점 설치할 때도 엄격한 인가요건으로 제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위는 금융위와 조율 끝에 영업구역 내 지점 등의 설치요건을 완화하는 선으로 매듭지었다. 영업구역 외 지점 설치 규제 유지를 고수하는 금융위의 고집을 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업구역에 인수합병 제한·의무대출비율 뒤엉켜
금융당국이 영업구역 제한에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역주의 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M&A를 제한하는 논리와 직결돼 있다. 금융위원회는 “영업구역 확대를 초래하는 동일 대주주의 3개 이상 저축은행 소유지배는 불허한다”고 못박으며 “사실상 전국 단위 영업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타 금융권역과 달리 지배구조가 1사(인)에게 집중된 경우가 많아 대주주 요구에 따른 공동대출, 공동투자 등 불건전한 영업행위 발생할 가능성도 거론했다. 하지만 저축은행의 전국화를 막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 단적인 사례가 J트러스트그룹의 2016년 DH저축은행(부산·울산·경남) 인수 불발이다. JT친애저축은행(서울)과 JT저축은행(인천·경기)을 거느린 J트러스트그룹은 인수 막바지 영업구역 확대를 우려한 금융당국의 불허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합병도 불가능하기는 매한가지다. 키움저축은행과 키움YES저축은행은 어정쩡한 투 뱅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불필요한 중복 투자도 방지할 수 있다는 설득에도 금융당국은 불가 방침을 굽히지 않는다. C저축은행 대표는 “대부업체들도 전국구 영업을 하고 인터넷전문은행들도 전국구 영업을 한다”며 “리스크와 규제강도가 비례한다는 금융당국 기준을 보더라도 유별날 정도”라고 말했다.
의무대출비율 규제 역시 영업구역 제한으로부터 파생되는 이슈다. 저축은행이 속한 권역에서 기업과 개인 대출이 전체 대출의 일정 비율을 넘어야 하는 권역별 의무대출비율 목표가 있다. 서울, 인천·경기 지역은 의무대출비율이 50%이며 나머지 4개 권역도 의무대출비율이 40%다. D저축은행 대표는 “영업점 방문 없이 신청부터 실행까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대출에 익숙해진 서민들의 니즈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규제”라고 말했다.
저축은행, 손발 묶어둔 비상장사 투자 제한(10·10룰)도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 사태 이후 자정 노력의 결과 안정성이 이전보다 한결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또 저축은행 관련 규제 합리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다만 영업구역 제한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시기상조로 본다. 의무대출비율의 경우 차주인 중소기업의 사업·생산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부동산 담보물의 소재지가 영업구역 내에 있으면 영업구역 내 대출로 인정하는 식으로 일부 완화 중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