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면 찾아오는 가축전염병…혈세 4조 날리고도 '속수무책'

최근 4년간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 직접 피해액만 6911억
지난 1년간 고병원성 AI로 3800여만마리 닭·오리 살처분
조기 신고 시스템 구축·적정 사육규모 유지 등 대안 제시
그러나 비용 등 이유 현장서 외면…지자체 무관심도 한몫
  • 등록 2017-11-01 오전 6:30:00

    수정 2017-11-01 오전 10:37:45

지난해 3월부터 올해까지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전국 37개 시·군 1133농가에서 3800여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된 가운데 세종의 한 농가에서 닭에 대한 살처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최근 수년전부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으로 매년 수천억원대의 피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의 방역대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장형 밀집축산, 과학적인 역학조사 외면, 정부·지자체의 땜질식 처방 등의 고질적인 관행이 여전해 개선되지 않고 있어 올해에도 또다시 대규모 가축전염병의 창궐이 우려되고 있다.

방역당국이 충남 천안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따른 이동 차량 방역을 하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해마다 반복되는 구제역·AI 등 가축전염병으로 혈세 줄줄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까지 8년간 전국적으로 발생한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으로 발생한 직접적인 피해액만 4조원대에 달한다. 이 수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과 소독, 소득안정자금 지원 등만 포함한 것으로 축산농가의 개별적인 피해금액을 합산할 경우 전체 피해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까지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전국 37개 시·군 1133농가에서 3800여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다. 이에 따른 살처분보상금과 생계소득안정 자금, 입식융자수매, 소독 등 3100여억원이 투입됐다. 구제역 역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2010~2011년의 경우 348만마리의 소와 돼지가 사라졌고, 피해액도 2조 7383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구제역과 AI가 터질 때마다 “가축방역 정책의 틀을 바꿔 재발을 막겠다”고 공언했지만 매번 공염불로 끝났다.

특히 전염이 쉽고 피해가 커지는 공장형 밀집축산, 거점중심의 차단방역 등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근시안적인 대처로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수행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축산업이 축산농가가 근접한 가운데 공장형 밀집축산 형태로 발전하면서 농장 간 전파가 빠르게 진행돼 가축질병 확산의 조기 대응이 어렵고, 기존 방역체계가 점진적 체계로 구성돼 가축질병 확산의 조기 진압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현장 중심의 강력 초동대응체계 구축 △바이러스의 농장유입 억제를 위한 농장 중심의 차단방역 강화 △가축질병의 조기신고 시스템 구축 △농가당 가축의 적정사육규모 유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전시에서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구제역 예방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사진=대전시 제공
◇ 화키운 공장형 밀집사육…비용 문제로 무대책

농림부는 구제역 및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가능성이 높은 10월부터 내년 5월까지를 특별방역대책기간으로 정하고, 가축질병 발생방지 및 안정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일제접종과 백신비축량 확대, 백신미흡 농가 점검, 가상방역훈련 등을 통해 취약요인을 집중 관리하고, 맞춤형 현장 방역교육, 간담회, 홍보 등 농가 방역의식을 개선하고 현장소통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이 눈 앞에 불끄기에 급급한 미봉책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구제역과 AI 등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철저한 역학조사를 통해 이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변형됐는지 등에 대한 과학적 접근보다는 땜질식 처방만 남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살충제 계란 파동을 비롯해 각종 가축전염병이 천문학적인 피해를 낳은 주원인은 공장형 밀집사육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육우 등 소의 농가당 사육 마릿수는 1990년 평균 2.62마리에서 2010년 16.86마리, 올해 2분기 기준으로 31.5마리로 급증했다.

돼지의 경우 1990년 농가당 34.05마리에서 2010년 1237.63마리, 올해 2299마리로, 닭은 같은 기간 462.5마리에서 4만 1051.88마리, 5만 3893마리로 각각 늘었다.

학계는 물론 정부도 공장형 밀집 사육의 문제점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사육밀도를 낮추면 생산단가가 올라간다는 점이다.

최소 수천마리 이상의 소나 돼지를 입식해야만 분뇨처리 등 현행 환경기준에 맞는 대규모 설비를 구축할 수 있고, 이익을 낼 수 있다.

주민 민원과 각종 규제로 신규 농장 설립이 어려워진 것도 공장형 밀집사육을 부추기고 있다.

충남 홍성의 한 축산농가 관계자는 “농가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소음으로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기존에 있는 축사는 어쩌지 못하지만 방목에 가까운 선진국형 축산업으로 가기 위해 신규 농장을 허가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육군이 세종시의 가금류 농가들을 대상으로 방역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 주먹구구 방역대책 화 키워…대응체계 개편해야

각 지방자치단체의 주먹구구식 대응 체계도 전면적인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가축사육 규모에서 전국 1위인 충남의 방역에 대한 업무가 폭주하고 있지만 전담 인력 부족과 처우 문제 등으로 되레 직원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축산방역은 근무지역도 도시보다는 농촌에 집중되면서 생활 편의성이 열악하고, AI나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이 발병할 경우 수일에서 수개월간 퇴근이 없는 생활이 계속된다”면서 “문제는 큰 일을 해결한 뒤에도 승진이나 보직 등 인사상 이익은 다른 직군이 독식하고, 축산방역직 공무원들은 몇명 안된다는 이유로 계속 밀리면서 사기가 꺾여 있다”고 전했다.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도 향후 해결해야할 과제다. 올해 발생한 고병원성 AI도 전북 군산의 종계장이 닭의 집단폐사 이후에 신고하지 않고, 쉬쉬하다가 확산을 초래했다. 또한 구제역 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한 것처럼 속인 농가로 인해 방역체계에 혼선을 준 사례도 있었다.

이에 대해 농림부 관계자는 “올해 처음으로 전체 오리 사육의 19%를 제한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시행 중이며, 취약 농가에 대한 CCTV 설치, 가금농가 전담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공장형 밀집사육과 함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백신 접종 등 근본적인 축산방역 체계를 마련해 내달경 정부 입장을 최종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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