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읽는증시]대치동 은마아파트 열채값 뜯어낸 주총꾼

주총꾼 돌려보내는 '무마비' 관행…등급따라 봉투 두께 달라져
금융당국 단속하지만 실효 못거둬…"목소리 크면 주총꾼인가"
일본도 골치…상장사 임원 피습당하는가 하면 사장 사퇴까지
주총꾼 따돌리려 일부러 한날 한시 주총개최…일반주주 기회 박탈
  • 등록 2019-03-16 오전 9:00:00

    수정 2019-03-16 오전 9:00:00

기업을 협박해 돈을 받아낸 주총꾼 가운데 명문대 출신도 있었다는 동아일보 1983년 2월25일 치 보도.(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매해 3월은 정기주주총회 시즌이다. 총회 참석은 주주 권리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주주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주주총회를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심보의 주주 얘기다. 심보가 어찌나 속됐으면 증권가에서는 이런 이를 ‘주총꾼’이라고 했다.

등급 따라 달라지는 ‘주총꾼’ 대우

이들이 상장사를 겁박한 일은 예부터 차고 넘친다. A은행 소액주주 B씨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은행장을 찾아가 대출을 요구했다. 주주총회를 앞둔 A은행은 B씨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B씨는 소액주주 탈을 쓴 주총꾼이었다. 1974년부터 6년간 5개 시중은행이 그에게 당했다. 그는 협박으로 대출받은 2억1200만원으로 사채를 굴렸다. 1979년 대치동 은마아파트 첫 분양 당시 34평형이 2094만원에 팔렸다. 널찍한 은마아파트 열 채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당시 서울 시경은 1980년 A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앞서 B은행처럼 주총꾼 등쌀을 배겨낼 재간이 없는 상장사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소란을 피워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수법이 일반적이었다. 폭언과 폭력을 쓰기도 했다. 이들이 주총장을 휘젓게 하느니, 불출석을 조건으로 ‘무마비’를 건네곤 했다. 주총꾼도 급이 나뉘었다. 골치가 얼마나 아픈지에 따라, ‘무마비’ 봉투 두께도 달라졌다. 1990년대 중후반 증권가에서는 주총꾼을 1~4등급으로 구분하고 급에 따라 10만~50만원을 건넸다.(매일경제 1996년 5월23일 치)이었다. 한국상장사협의회가 1997년 회원사 317개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77.4%(233개사)가 주총을 앞두고 주총꾼한테서 금품을 요구받는 실정이었다.

주총꾼 잡으려 주총꾼 섭외

금융당국도 비상이었다.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 전신)과 한국거래소는 주총 시즌이 되면 요주 상장사에 사람을 보내 주총꾼의 난장에 대비했다. 그러나 실효를 거두기 어려웠다. 우선 주주총회에서 주총꾼이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높이고 과격한 요구를 하는 주주를 모두 주총꾼으로 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총꾼이 설치니, 이들을 빌어먹는 이들도 있었다. 회사를 괴롭히는 주총꾼이 아니라, 편을 들어주는 ‘주총꾼’ 말이다. 주총시즌이 되면 이들을 섭외하려는 경쟁이 업계에서 치열했다. ‘분위기에 맞춰 바람을 잡아줘서 의사진행을 쉬워지기 때문’(경향신문 1978년 2월26일)이었다. ‘주총꾼을 데려와 주총꾼을 치는’, 이른바 증시 판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이웃 일본도 주총꾼 탓에 골치였다. 소란, 협박, 폭력을 일삼는 게 우리와 수법도 비슷했다. 1994년 2월 후지필름 전무가 주총꾼의 칼에 찔려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상장 회사가 어느 주주든 간에 금품을 챙겨주는 것을 잘못이었다. 주주를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상법에서 주주에 대한 이익공여를 금지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주주에게 금품 제공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총을 무난히 넘기려는 상장사의 욕구는 탈을 부르곤 했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가 1997년 주총꾼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임직원이 형사처벌을 받았고 일본 최대 증권사 노무라증권 사장은 비슷한 이유로 사표를 내야 했다.

주총꾼 등쌀에 주총일 담합 등장

하다못해 ‘한날한시에 주주총회를 열자’는 말까지 나왔다. 어차피 주주총회는 3월 말에 집중하니 아예 일시를 맞추자는 이른바 ‘주총데이 담합’이었다. 그러면 주총꾼이 주총장을 옮겨다녀야 하니 여러 곳에서 소란을 피우기가 어려울 테니 마련한 고육책이다. 실제로 자의든 타의든 주주총회는 겹쳐서 열리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터에 선의의 주주가 주총에 참석할 기회를 잃는 사태도 일어났다. 증권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나서 상장사가 주총을 분산 개최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주총꾼 등쌀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주주를 주총장으로 ‘모셔오는’ 게 최대 현안인 지금 보면 배부른 소리다. 지난해 섀도 보팅 폐지 이후 의결 정족수를 채우려면 주주 하나가 아쉬운 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권리’를 팔아 뒷돈을 챙기려는 주주는 ‘격리’가 우선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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