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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깃발 아래 아쉬울 것이 없었던 영국은 요즘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하느라 바쁩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속해 있을 때는 유럽연합이 다른 국가와 맺은 무역 협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됐지만, 유럽연합을 나오면서 다른 국가와 개별적으로 무역 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유럽연합과 깔끔하게 일단 결별부터 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현재 영국과 유럽연합 간 어떻게 결별할지 협상을 진행 중인데 영국의 EU 재정부담금, 영국에 들어와 일하면서 사는 유럽연합 국민의 영국 내 지위 문제, 아일랜드공화국과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영국 산업과 경제를 살리고 주요 무역 상대국에도 영국의 앞날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개별 무역협정을 빨리 맺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데 유럽연합과의 결별에서부터 삐걱거리자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주요 무역상대국들에 조금만 기다려달라, 영국이 유럽연합에 있을 때보다 더욱 서로에게 좋은 무역 협정을 맺자고 구슬려보지만 상대국들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일본을 예로 들어 볼까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8월말 3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방문의 목적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일본은 영국의 주요 사업 파트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면서 영국과 일본이 끈끈하게 경제협력을 하자는데 대한 일본 측의 확답을 받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양국 간 각종 사업 협력 기회 등도 검토됐죠.
영국은 비즈니스 공용어인 영어를 쓰는 데다 유럽 본토와도 교통 네트워크가 잘 발달해있어 일본 기업뿐 아니라 많은 글로벌기업들이 유럽연합 회원국들 가운데서도 영국을 유럽 본사 거점으로 많이 두고 있었죠. 그런데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되면, 향후 영국과 EU 간 새로운 무역협정 결과를 봐야 알 수 있긴 하겠지만, 기존처럼 무관세로 EU 단일시장 접근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선 일본 기업들로서는 굳이 EU 시장에 물건을 팔기 위해 영국에 거점을 둘 필요가 없어집니다. 실제 벌써부터 금융권이나 제조업계 등지에서 영국이 아닌 다른 유럽 지역으로 유럽 본사나 공장을 옮기는 것을 검토하는 일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에 EU와 영국 시장 가운데 우선순위를 묻는다면 당연히 28개국을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어 시장 파이가 훨씬 더 큰 EU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7월 일본과 EU가 자유무역협정을 완료하기까지 18차 협상,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 막 그 결실을 맛보려는 참이죠. 또 일본은 호주,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경제 대국들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 발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EU 와의 결별 협상도 지지부진한데다 언제 일본과 개별 무역협정을 시작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국과의 새로운 무역협정은 일본의 많은 현안 가운데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죠.
이에 따라 일본 정부나 기업들도 겉으로는 메이 총리의 영일 경제협력 강화 주장에 동조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실제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의 경제협력과 투자 등에 얼마나 나서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이 지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