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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편하게 만나 이름을 부르며 술잔을 기울이던 남편의 남동생과 여동생에게는 꼬박꼬박 ‘도련님’, ‘아가씨’라고 불러야 했다. 시가 식구들에게는 극존칭을 써야 하는 반면 시가 어른들이 오씨를 부르는 호칭은 ‘며늘애야, 새아가, 새언니, 형수’ 등 어느 것 하나 평대나 하대 수준이었다.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 문제는 명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주제다. 아가씨나 도련님 등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유교문화에서 출발한 호칭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와 민간에서도 다양한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국립국어원의 심층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에 가정내 호칭 개선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남여간 평등적인 호칭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새로운 언어예절이나 규범을 만들 때는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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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그만했으면 하는 성차별적 언어나 행동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요?’라는 주관식 질문에는 1275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국어·여성계 전문가를 통해 추린 결과 시댁은 ‘시가’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또 ‘여자가·남자가’ 처럼 성에 따른 고정관념이 박힌 역할을 강조하는 표현보다 ‘사람이·어른이’라는 표현을 쓰자는 의견이 많았다.
가족 내 남여간 차별적인 호칭 문제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10~60대 국민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5%가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로 높이고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로 높이지 않고 부르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답했다.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집안을 가리킬 때 ‘시댁’으로 높여 말하고 결혼한 여성이 아내의 집안을 ‘처가’라고 평대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는 비율 역시 59.8%에 달했다.
여가부, 호칭 개선 추진…내년초 개선책 내놓을 듯
이처럼 가족 내 호칭 문제 개선이 필요하든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가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급속한 가족환경 변화에 대응해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 보완하고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국립국어원이 현재 심층연구를 진행 중이며 오는 11월말께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여가부는 이를 바탕으로 대국민활용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박미영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연구사는 “2011년 발간한 표준언어예절을 개정해 ‘표준’이라는 단어를 빼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국민활용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호칭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의 의견도 모두 수렴해 적절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원은 모두 하나의 설(說)에 그칠 뿐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며 “국어원에서 진행하는 모든 연구에도 해당 설들을 근거로 제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