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회계사 늘려야”…서울대 교수 ‘작심 발언’ 이유는

‘뜨거운 감자’ 회계사 증원 문제…회계업계 “현실 감안해야”
新외감법에 수요 늘지만…고급 인력 구하기 어려운 中企
최종학 “빅4 근무만이 다 아냐…인프라 높이는데 기여해야”
  • 등록 2019-04-20 오전 10:30:00

    수정 2019-04-21 오후 2:44:09

지난 10일 열린 한국회계정보학회 심포지움에서 참석자들이 회계 전문가 역할과 책임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사진=한국회계정보학회 제공)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현재 (우리나라) 회계사 숫자는 너무 부족하다. 회계사 합격자 숫자를 조금 늘려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회계업계에서는 공인회계사 증원이 뜨거운 감자다. 회계사 숫자를 늘릴지 말지를 두고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최종학 서울대 교수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최 교수의 발언을 다룬 기사에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비판하는 댓글이 가득 달렸다. 그는 왜 세간의 원망을 들어가면서 이 같은 말을 했을까.

◇ “회계 전문 인력 어디서 구하나”…기업 하소연

회계사 증원 이야기가 불거진 것은 외부감사법 개정을 계기로 회계법인은 물론 기업에서도 회계 전문인력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부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019년도 회계사 최소 선발 예정인원을 1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회계사 선발 인원은 500명 이하 수준이었다. 2000년대 들어 1000명 정도를 뽑다가 2009년부터 최근까지는 900명 안팎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외부감사법 개정으로 외부감사 대상이 늘어나고 감사시간 증가가 예상되면서 다시 1000명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회계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으로 회계 업무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력을 늘린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처사라며 즉각 반발했다. 회계사들은 ‘공인회계사 증원 반대모임’을 조직하고 금융위 청사 앞에서 여러차례 시위를 벌이는 등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부와 업계간 논란이 채 식지 않은 상황에서 최 교수는 왜 회계사 증원 이야기를 꺼냈을까. 그는 수많은 회계사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회계 관련 베스트셀러 책을 저술하기도 한 회계 분야 권위자다.

최 교수는 감사환경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회계 전문인력 부족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기업들은 스스로 회계 처리할 역량을 키워야 한다”면서도 “그러기 위해 능력을 갖춘 인재를 보유해야 하는데 문제는 인력을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000명 가까운 회계사를 뽑아도 재학생은 취업을 하지 않고, 나머지는 대부분 4대 회계법인에 들어가는 게 현실이다. 기업은 물론 중소 회계법인조차도 회계 인력을 채용할 기회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회계 전문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는 회계 역량을 키우라고 하는데 회계사들을 구하고 싶어도 인력 풀 자체가 크지 않다”며 “최근 회계법인 연봉이 더 크게 올라가면서 기존 기업들에 근무하던 회계사들이 다시 회계법인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의 고민은 더 크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회계사를 채용하면 기존 직원들과 위화감이 생길 수가 있고, 설사 채용하고자 하더라도 작은 기업에 지원할 회계사가 누가 있겠냐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최 교수가 회계사 증원 문제를 언급한 것이 사실상 총대를 멘 작심 발언이라는 평가다. 한 회계학계 관계자는 “회계사 증원은 반대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사실 필요로 한다고 해도 회계사 출신들은 아무 말을 할 수 없다”며 “회계 분야에서 저명한 최 교수가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화두를 던지고자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최 교수는 “빅4에서 일하는 것만이 회계사의 역할은 아니다”라며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회계 인프라를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가자격증 보유자인 회계사로서 사회에 보탬이 돼야 할 사명 의식의 필요성을 일깨운 것이다.

지난 1월 11일 ‘공인회계사 증원 반대모임’ 소속 회계사들이 서울 정부청사에서 시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무작정 늘리는 것 능사 아냐”…대안들도 제시

물론 무작정 회계사를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반론도 근거가 있다.

우선 당장 회계사 합격자 수를 대폭 늘린다고 그만큼 뽑을 수가 없다. 회계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회계학 전공자 자체가 한계가 있어서다. 금융위는 올해 회계사 시험 합격자수를 1000명으로 전년대비 150명 가량 늘렸지만 응시자수는 오히려 전년대비 2.4% 줄어든 9677명에 그쳤다. 이를 두고 한 회계사는 “회계사 시험을 보려는 대학생들은 보통 3~4학년인데 이들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줄진 않기 때문에 응시자 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며 “신외감법이 시행되고 회계법인 대우가 좋아진다고 해도 급격히 응시자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전했다.

기술의 발달로 회계 업무가 날로 고도화되는 것도 회계사 인력 증가에는 부담 요인이다. 회계사는 4차 산업혁명에서 사라질 수 있는 직종 상위권으로 꼽히곤 한다. 지금도 대형 회계법인들은 기업들을 감사할 때 주문서 분류 같은 단순 업무들은 AI를 적용해 처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과거보다 감사에 들어가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인력 수급이 힘들다고 회계사를 더 뽑았다가는 몇 년 지나지 않아 회계사 실직을 걱정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회계법인의 감사부문 임원은 “표준감사시간 도입 등으로 회계사가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몇 년 후에는 오히려 인력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여러 가지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세워지거나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긴 것처럼 회계전문대학원 같은 교육기관의 필요성도 제시됐다. 다만 이는 사시 폐지 때처럼 회계 업계의 엄청난 반대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도입은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미국 등 해외 공인회계사 자격증 보유자를 인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모든 분야에서 국내 공인회계사와 동등한 감사인으로 정하지는 않고 내부회계관리제도 같은 일부 분야에 국한한다면 이해관계 충돌을 최소화하고 인력 수급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공인’회계사 고유의 영역은 지키되 기업 회계업무를 도울 수 있는 인력을 키우자는 제안도 있다. 회계사 출신의 또 다른 대학 교수는 “외부감사는 공인회계사에게 맡기고 나머지 기업 회계 분야는 따로 자격증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을 회계 전문인력으로 인정한다면 감사 부문과 충돌이 생기지도 않고 기업 인력 수급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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