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첫 명절인 지난 설. 김씨는 친정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남들과 같이 시가로 먼저 향했다. 전날 도착한 시가에서 허리가 끊어질듯 전을 부치고, 추석 당일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다녀왔다. 이제 친정에 갈 생각에 짐을 정리하며 남편에게 눈치를 보내는데 시어머니가 시외가에 가야한다고 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시가의 명절 스케줄이라는 얘기에 당황스럽고 남편이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형제가 많은 시외가에는 이름도 모르는 남편의 이모와 외삼촌 그들의 자식까지 4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인사는 잠깐, 하루종일 또 그들의 밥상과 술상을 차리고 치워야했다. 김씨는 내 친정도 못 갔는데 왜 시어머니의 친정까지 챙겨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시가 다음에 처가…女 54.9% “불합리해”
연휴를 앞두고 맘케페나 커뮤니티에서는 김씨처럼 시댁 뿐 아니라 시외가의 방문까지 강요받는 것에 대한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외가 방문이 아니더라도 명절에는 ‘무조건 시가이 먼저’라는 관행에 여성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친정(처가)을 방문하지 않고 시가(본가)만 방문한다고 응답한 경우도 5.4%나 됐다.
‘명절에 위와 같은 부모님댁 방문 형태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남성은 14.1%에 불과한 반면, 여성은 54.9%나 됐다.
명절 기간 남녀 간 역할 및 노동량 배분 형태가 불합리하다는 응답은 54.4%로 나타났다. 남여간 견해차가 컸다. 여성은 80.6%가 불합리하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43.1%로 절반을 밑돌았다.
남성들 응답자는 ‘아내가 60% 이상을 담당한다’고 답한 비율이 68.7%로 가장 많았다. 그 중에서도 본인(남성)이 20%, 아내가 8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가 22.8%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본인이 30%, 아내가 70%를 담당한다는 응답이 18.3%를 차지했다. 여성은 본인(여성)이 가사분담 전체를 오롯이 전담한다고 응답한 경우도 15.3%나 됐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올 추석을 앞두고 117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역시 비슷하다. 남녀가 꼽은 명절 성차별 행동 1위가 ‘여성만 하는 가사분담’으로 전체 53.3%를 차지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명절 연휴를 즐기는 대신 직장에 출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이번 지난 설에 연휴를 즐기지 않고 출근을 택한 워킹맘 신수진(가명·36)씨는 “쌓인 업무도 많고 명절 기간 음식준비에 시댁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아서 당직근무를 신청했다”며 “명절 때마다 남편과 싸우는 것도 지친다. 이번 연휴엔 남편과 아이들만 시가에 보내고 밀린 업무를 끝내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