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m 426일…숫자로 본 파인텍 타결

75m 굴뚝농성 426일·단식 33일·6차 교섭 20시간20분
노동자 5명 복귀…최소 3년간 고용 보장
마침내 땅 밟은 2명, 녹색병원서 입원치료
  • 등록 2019-01-12 오전 11:25:56

    수정 2019-01-12 오전 11:30:36

파인텍 노사 협상이 6차례 교섭 끝에 극적으로 타결된 11일 파인텍 노동자인 홍기탁(오른쪽)·박준호 씨가 서울 양천구 목동 서울열병합발전소 75m 높이 굴뚝에서 426일째 농성을 끝내고 내려온 뒤 노조원의 발언을 들으며 병원 이송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75m 높이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이어온 파인텍 노동자들이 지난 11일 마침내 땅을 밟았다. 지난 2017년 11월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 서울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오른 지 426일 만이다. 굴뚝 위 농성으로는 유일무이한 초장기 기록이다.

1년 2개월 동안 농성자들은 굴뚝 위의 폭 80㎝ 정도 공간에서 두 번의 겨울과 한 번의 여름을 버텨냈으며 여기에 더해 이달 6일부터는 단식투쟁까지 들어갔다.

12일 ‘스타플렉스(파인텍 모회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에 따르면 굴뚝 위에 있는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의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 등 2명의 노동자는 전날 오후 지상으로 내려온 뒤 체중 감소와 심한 탈수 증세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들은 당분간 녹색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며 입원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현재 죽과 국 등으로 간단한 식사가 가능하며 건강상태가 서서히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함께 파인텍 농성 노동자들의 건강상태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난해 1월부터 건강관리를 지원해왔다.

지난 10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제6차 교섭은 하루를 넘겨 11일 오전 7시20분 합의에 이르렀다. 굴뚝 농성자 단식 돌입과 사측의 강경 발언 등 극한 대치로 치닫던 파인텍 노사 양측은 합의문 조항과 문구 하나하나를 점검하면서 20시간20분간 협상을 벌였다.

이에 따라 사측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고 동료의 굴뚝 농성을 끝내겠다며 지난달 10일부터 들어간 차광호 지회장의 단식도 33일 만에 끝났다. 앞서 차 지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27일 구미공단 스타케미칼 45m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시작해 2015년 7월 8일 사측과 고용 승계 등에 합의하면서 408일 만에 굴뚝농성을 종료한 바 있다.

지난 11일 75m 높이 굴뚝에서 426일째 고공 농성을 끝낸 파인텍 노동자들이 119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굴뚝에서 내려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08+426’ 두 번의 굴뚝농성…6년 만에 되찾은 일터

“일하게 해달라”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요구가 관철되는 데 무려 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노동자들은 목숨을 건 400일 이상의 고공농성을 두 차례나 벌인 후에야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노조는 강경하게 요구하던 ‘모회사 고용 승계’ 요구를 내려놨고 사측은 ‘절대 불가’로 맞서던 ‘김세권 대표의 책임 명시’ 부분을 양보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의에 따라 홍기탁·박준호·차광호·김옥배·조정기 등 파인텍 노동자 5명은 스타플렉스 자회사인 파인텍 공장에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됐다. 김세권 씨는 스타플렉스의 대표이사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파인텍 대표이사를 맡기로 했다.

파인텍은 이들의 고용을 최소 3년간 보장하며 임금은 2019년 최저임금(시급)+1000원으로 정했다. 노동시간은 주(週) 40시간, 최대 52시간으로 하고 추가 연장시간은 노사가 합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농성 411일째인 지난달 27일부터 노사 양측은 첫 교섭을 개시했으며 앞서 5번의 교섭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모두 무위로 돌아갔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지속된 파인텍 노사 갈등의 시작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 지회장과 홍 전 지회장, 박 사무장 등 5명은 모두 ‘한국합섬’ 출신이다. 한국합섬은 파산했다가 지난 2010년 7월 ‘스타플렉스’의 자회사 ‘스타케미칼’을 새 인수자로 맞이한다.

하지만 2011년과 2012년 각각 당기순손실 156억원과 16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를 냈다. 이에 스타플렉스는 스타케미칼 공장을 매각하고 회사를 청산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2013년 2월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권고사직을 거부한 29명을 해고했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를 구성, 길고 긴 투쟁을 시작했다. 차 지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27일 구미공단 스타케미칼의 45m 높이 굴뚝 위에 올라가 408일간 고공 농성을 벌였다. 그 결과 스타플렉스는 남아있던 해고자 11명을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았던 노조는 그러나 충북 음성에 새로 설립된 ‘파인텍’이 껍데기뿐인 회사였다고 주장했다. 월급은 스타케미칼 시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기숙사에서의 식사는 하루 한 끼만 제공됐다. 결국 하나둘 동료들이 공장을 떠났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차광호(왼쪽 두번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과 김세권 파인텍 대표이사 내정자가 합의서를 작성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농성 411일 만에 노사 첫 교섭…파인텍 노동자 5명 복직

노조는 새 공장 가동 10개월 만에 또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이번엔 홍기탁·박준호 씨가 2017년 11월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굴뚝농성 411일 만인 지난해 12월 27일 파인텍 노동자들은 김 대표와 처음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교섭은 서로의 확연한 입장 차이만을 확인할 뿐 진척이 없었다.

5차례나 파행을 거듭한 끝에 양측은 마침내 11일 서로 양보하며 극적으로 합의를 도출했다.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룬 데는 종교계 인사들의 역할이 컸다. 그동안 교섭 과정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종교계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파인텍 노사를 중재하고 협상에도 참석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처음에 노사가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종교인들이 첫 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 파인텍이 발전하는 회사가 되고 그 과정에서 좀 더 성숙한 노사관계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인텍 노동자들과 뜻을 같이해 온 공동행동은 작년 5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서 스타플렉스 사무실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약 20㎞를 왕복하기도 했다. 송경동 시인, 나승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박승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등도 연대하는 의미로 25일째 단식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단식 23일 만인 9일 심장 이상이 발생해 단식을 중단하기도 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어려운 합의를 이룬 노사 양측의 노력과 결단에 감사하다”며 “갈등 있던 파인텍이 상생·화합의 파인텍이 되도록 함께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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