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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올해 10월 상장 폐지돼 8800여 명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기업→세무사→공무원’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지역 토착 비리 문제로 드러났다.
상폐 막으려 670억 분식회계·31억 횡령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전 코스닥 상장사 Y사 대표 A씨와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전·현직 세무공무원 B씨, 세무사 C씨 등 총 22명을 입건한 뒤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이 받고 있는 혐의는 △사기 대출 △사문서 위조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제 3자 뇌물교부 등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Y사가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하자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해 670억원대 분식회계를 통해 31억원을 횡령하는 등 부정을 저질렀다.
Y사는 지난 2001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Y사는 주로 터치스크린과 모듈 등 휴대전화 부품을 개발·제조했다. Y사는 지난 2017년 기준 △자본금 268억원 △매출액 32억원 △당기순손실 364억원을 기록했다. Y사는 같은 해 감사보고서에서 회계법인으로부터 상장 폐지 요건인 감사 ‘거절’ 의견을 받아 지난 3월 거래가 정지됐다.
거래처 명판·도장 조작해 계약서 등 위조
경찰이 Y사의 덜미를 잡은 것은 지난해 5월이다. 경찰은 Y사가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를 통해 수년간 세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세금을 탈세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고 Y사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Y사가 사용한 분식회계 수법은 허위로 거래처를 만들어 마치 해당 거래처로부터 선급금이나 대여금을 지급하거나 회수한 것처럼 조작하는 방식이다.
Y사는 허위 거래처를 만들기 위해 사장된 회사들을 인수해 페이퍼컴퍼니(서류 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여러 개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는 또 실제 존재하는 회사의 명판과 도장을 허위로 파서 계약서와 채권채무조사서 등을 위조하는 등의 수법으로 회계법인을 속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Y사는 회계법인을 속이기 위해 회사 홈페이지 공지사항란에 미국 대기업의 임직원이 기술 개발과 양산을 위해 본사를 방문했다거나 대기업과 부품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올리기도 했다.
Y사는 또 분식회계 과정에서 세무조사를 피하고 탈세를 목적으로 세무사와 세무 공무원들에게 4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줬다. 전직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에게 전달된 3억 7700만원 중 수수료를 제외한 2억 2000만원이 세무 공무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뇌물을 받은 세무 공무원들은 Y사가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눈감아주는 식으로 세무조사를 무마했다.
상폐 결정 등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기각 뒤 항고
Y사의 분식 회계 규모와 피해자 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Y사가 조작한 페이퍼컴퍼니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며 “Y사가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제품을 수출한 것처럼 실적을 꾸몄다. 검찰의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 분식회계와 횡령 규모는 현재 수준을 훨씬 웃돌 수 있다”고 말했다.
Y사는 허위로 조작한 재무제표를 토대로 은행 2곳에서 총 18회에 걸쳐 228억원을 대출받았다. Y사는 또 수십차례에 걸친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일례로 Y사는 지난해 6월 100억원대의 CB를 발행했다. 하지만 Y사는 CB발행 1년이 지난 뒤 내부 경영상의 문제로 CB의 원리금을 갚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에 투자자들의 추가 피해도 예상된다. CB는 만기 때 원리금과 이자를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채권으로 투자자는 원리금과 이자 대신 해당 회사의 주식을 받을 수 있다. Y사는 현재 상장이 폐지됐기 때문에 CB투자자들은 원리금과 이자를 주식으로 받을 수 없다. Y사는 대표 구속과 실적 조작 등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만큼 코스닥시장의 재상장 가능성도 희박하다.
Y사는 지난 9월 한 지방법원에 상장폐지 결정 등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Y사는 법원 결정에 불복해 항고를 제기한 상태다.